어느 송년 모임에 갔더니 사회자가 참석자들에게 농담처럼 이렇게 주의사항을 건넸다. 이제 이미 전국민이 줄기세포 준전문가 반열에 오른 상황에서 그 얘기가 나오면 모두가 한마디씩 할테고, 그러면 전부가 우울해질테고, 모처럼의 송년분위기를 망치게 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이유 있는 얘기였다.
어제 동짓날 아침 엄청난 눈과 함께 매서운 추위가 온 대지를 덮었다. 지난 7일 대설(大雪) 이후 거의 보름 동안 충청 서해안 지역과 호남지방에는 여지껏 볼 수 없었던 눈이 내렸다. 추위 또한 영하 10도 이하를 줄곧 유지했다.
마치 지난 십수년 동안 난동(暖冬)의 기세에 밀려 그 위력을 상실했던 동지(冬至) 등 겨울의 절기들이 대반격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대로라면 연초에 다가올 소한(小寒), 대한(大寒)의 위력에 벌써부터 몸이 움츠러들 지경이다.
그러나 우리가 눈과 추위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의 흐름은 멈추지 않아 어느덧 이 해도 8일 밖에 남지 않았다. 성탄절도 어느새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가는 해에 대한 마무리의 준비도 채 안된 상태에서 성큼 다가선 새해가 부담스럽게도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올해같이 준비 안된 연말을 맞은적도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그럴까? 그 이유는 역시 연말에 불거진 황우석 쇼크의 영향이 큰 것같다.
올해도 예년과 같이 행정수도문제, 사학법문제 등등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연말에 있었지만 황우석 쇼크는 단연 압권이었으며, 온 국민의 머릿속을 멍하게 만드는 정신적 공황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일반 동물과 다른 점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노르웨이의 미래학자 에릭 뉴트는 ‘미래의 희망’을 들고 있다. 앞을 내다보고 보다 밝은 미래를 점쳐보는 것이야말로 인간만의 특권이며 인간의 삶에 커다란 활력을 주는 요소라는 것이다.
황우석은 확실히 지난 수년간 우리 모두의 희망이었다. 특히 신체장애로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희망 이었다. 물론 아직 그 희망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다. 확실히 깨진 것인지 아닌지 판가름 나기에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우리같은 문외한들은 결과가 나와도 잘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아파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간적 신뢰가 붕괴되는 모습이다. 공동의 업적으로 철썩같이 믿고 영광을 함께했던 25명 공동연구자들의 상호신뢰가 갈기갈기 찢기고 있는 모습이다.
사제관계가 허물어지고, 친구관계가 허물어지고, 동료관계가 허물어지는 그것은 단지 황우석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에 바로 내가슴이 찢기듯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서울대측에서 오늘 중간 발표가 있다고 하지만, 이제 본질에 대한 어떤 발표가 있다하여도 그로인해 찢긴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기가 어려울상 싶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버린 채 끝없이 내리는 눈이 연말을 보내는 한 가닥의 위안이 되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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