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진의충청비사] 35. 충청인의 기질

[안영진의충청비사] 35. 충청인의 기질

5백만 충청인의 기상으로 ‘행정도시’ 시대 열었다

  • 승인 2005-12-22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정치권 이해관계·지역利己로 우여곡절
60년대 ‘천도’주장후 40여년만에 결실
느림보·박수부대 오명 벗고 진취성 발휘
지방분권·국가균형발전 주역으로 우뚝




행정도시가 들어설 땅값을
놓고 이견이 있는 듯하다. 주민들의 원성이나 불만이 없도록 빠르게 추진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원래 이 사업은 60년대 초 ‘민간추위’가 정부청사 대전유치를 외친 게 그 효시였다. 그 경로를 되돌아보면 처음에는 - 정부청사 대전유치 → 행정수도건설 → 행정도시 안(案)으로 변질, 축소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때론 그것이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얽혀 표류했고 지역이기주의로 해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거기에 ‘헌재’의 판결로 당혹해 한 일도 있었다.

60년대의 천도(遷都) 주장은 서울 수도의 과밀해소보다는 서울과 휴전선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군사전략 면을 앞세웠고 수도 과밀(비만)해소책은 그 다음이었다. 그러나 휴전선 긴장이 얼마간 완화된 오늘에 와선 수도권의 과밀이 우선 과제로 등장했다. ‘서울 - 경기’ 즉 수도권 밀집현상은 오늘날 극에 달해 과밀뿐만 아니라 환경, 위생, 일조권, 교통과 부의 편재 모두에 있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특단의 처방 없이는 추스르기 어렵다는데서 수십 년 동안 거론되어 온 민족적 숙원이기도 했다. 한 도시가 그 나라 총 인구의 1할(10%)을 초과할 때 그 도시는 마비된다는 학설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상황은 어떠한가.

▲ 미국은 2억9385 인구에 뉴욕 800만명(0.6%, 2000년 기준) ▲ 중국 12억8697만명 인구에 상하이는 893만명 (0.6% 1999년도 기준) ▲ 일본은 1억2721만 인구에 도쿄 1181만(9.28%, 2002년 기준) ▲ 한국은 4819만 명에 서울이 1030만명(21%, 2004년 기준)이니 우리 서울은 과밀도시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엔 도시 형태가 웅대하다거나 공장이 많다는 게 자랑일 순 없다. 그래서 1970년대부터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소설(이호철)이 출간될 정도였다. 그러함에도 수도권 소산정책을 반대한다면 ‘지역이기주의’요, 정치술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새로 들어설 행정도시는 수도권 인구소산은 물론 국토의 균형발전, 그리고 빈부의 양극화를 좁히는데 큰 몫을 하리라는 걸 모를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중부권의 역할은 무엇이며 충청인의 긍지는 어떤 것인가를 조명해 볼 필요를 느낀다.

여기서 충청인은 누구인가? 또는 타인의 눈엔 우리 모습이 어떻게 비춰져 왔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부질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충청인의 장점(우월성)과 버려야 할 유산은 무엇인가? 타시도민의 기질에는 장단점이 없는가를 짚어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충청인을 가리켜 양반(兩班)이라 칭하지만 때로는 폄하, 악의에 찬 눈으로 매도당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모두 지난 이야기다. 선의에서 ‘양반’, ‘청풍명월(淸風明月)’하다가도 ‘느림보’, ‘박수부대’, ‘임종형(臨終型)’까지는 참는다 해도 ‘무정란(無精卵)’ 운운한다면 이는 악의에 찬 자극행위다. ‘양반’ 칭호는 역사적으로 명인과 거유(巨儒)를 많이 배출한 터전이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또 ‘청풍명월’은 원래 이 고장이 기름진 평야를 안고 있어 비교적 배불리 먹고 넉넉한 성품에 환경이 좋다 해서 지어진 칭호라 하겠다. 그리고 ‘임종형’ 역시 부끄러운 칭호는 아니다. 예절 있는 집안에선 부모의 임종을 지키는 걸 미덕으로 삼는다. 하지만 ‘느림보’라는 칭호엔 동의할 수가 없다. 말이 좀 느리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구한말 김대건 신부도 지역출신

하지만 행동이 느린 것은 아니다. 주전자의 물처럼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식의 즉흥성보다는 사려(思慮), 사색(思索) 끝에 행동한다는 건 장점이지 단점은 아니다. 시대마다 ‘여명’을 열어 온 발자취만 봐도 그러했다. 구한말 쇄국시대 천주교(카톨릭)를 맨 먼저 이 땅에 받아들이고 끝내 순교한 김대건 신부도 충청인이었고 개화기 ‘3일천하’로 유명한 김옥균도 이 고장 출신이다. 그리고 스포츠에서 육상 선수를 많이 배출한 것도 충청권이다.

60년대 이야기다. 전국체전 입장식을 중계하던 어느 아나운서가 “느림보 충남선수단이 입장합니다”라고 말해 분노를 산 일이 있었다. 그때 흥분한 나머지 ‘아나운서의 독설’이라는 칼럼을 쓴 일이 있다. ‘느림보’란 사석에서나 있을 법한 것으로 체전개막식 생중계라면 그것은 큰 망발이다. 물론 순간적인 실수였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충청도 양반을 꼬집는 방담 중엔 이런 말도 있다. 어느 양반집 대문을 두드리며 “이리 오너라!”를 연거푸 외치자 한식경 뒤에 “뉘시오?”라는 반응을 보이더니 한참 뒤에 신발 끄는 소리가 났고 기침소리가 들린 후 담장 위로 그 양반의 ‘대꼬바리’가 삐죽 드러나고서야 대문이 열리더라는 식의 비아냥….

물론 이는 풍자용일뿐 실화도 연구결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옛날 넉넉하고 당당했던 양반의 풍모가 그러했다면 누가 뭐라 반박할 것인가? 바로 이야기해서 ‘청풍명월’, ‘양반’하는 식의 칭호 역시 풍자를 위한 것일 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타 시도(8도)의 듣기 거북한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라는 별명도 마찬가지로 풍자용일뿐 근거없는 별명이다.

그러니 과학적 분석결과라거나 통계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 연원을 찾아보면 이렇다. 조선조 때 임금(정조)이 규장각(奎章閣) 학사들과 ‘世論閑談’을 즐기던 중 8도의 별명을 지어본 데 연유한다. 청풍명월(淸風明月) 암하노불(岩下老佛), 명경지수(明鏡止水), 그리고 어느 도는 이전투구(泥田鬪狗)라 우스개 삼아 지어 본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전형(典型)으로 생각할 근거와 이유가 없다. 서양에서도 일찍이 인간형을 2대 유형으로 설정해 놓은 채 오늘에 이어온다. 물론 문학작품상의 유형설정이었다. 햄릿(Hamlet)과 돈키호테(Don Quixote)로 구분을 했는데 햄릿은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비극의 주인공이며 ‘돈키호테’란 세르반테스의 소설 주인공인 저돌형(천방지축)을 말한다.

그러나 이젠 서구에서도 제3인간형을 설정한 셈이다. 소설 ‘25時’에 나오는, 영화에선 안소니 퀸이 그 모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3지대의 인물’ 착하디착한 인간형을 뜻한다. 그렇다면 서양의 인간유형 그 틀 속에 우리 충청인의 기질을 대입(代入)한다면 어느 쪽에 속할 것인가를 짐짓 생각해 본다.




넉넉하고 신중한 양반고장

충청인의 기질은 적극성이 모자라 그로인해 어떤 경우에도 피동(被動)이니 중부권을 ‘제3지대’ 또는 ‘완충지대’, 심지어는 ‘무정란’이라 악의에 찬 모함을 받은 때가 있었다. 물론 옛날이야기다. (이 점에 대해선 다음 회(回)에 논하기로 한다.)

내친 김에 충청인 기질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간다. 이것은 실화다. 충청도 출신 한 관리가 어느 도에 이동을 했다. 얼마 안가 부하직원(간부)이 퇴근길에 어느 화가 전시실에 안내를 했다. 미술에 조예가 없다보니 그림 앞에 멈춰서 있는데 “영감님, 미술 감각이 대단하십니다”라며 좋은 그림이라며 극구 치켜세우더라는 것이다.

그 후 1주일이 지났을까. 그 그림이 배달되더라고 했다. 남이 보더라도 상납행위치고는 점잖은 방식이다. 2년인가 지나 충청도 그 관리는 또 다른 지방으로 전근을 갔다. 어느 날 청내 순시 중, 한 부서가 텅텅 비어 있어 과장에게 연유를 묻자 “영감님! 이해하십시오!”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는 것이다. 요즘 박봉가지고 자식들 대학에 보내랴 어떻게 살겠느냐며 땅을 보러 나갔을 것이라고 했다. 요즘 말로는 ‘부동산투기’다. 하도 기상천외의 답변에 얼떨떨해져 그냥 집무실로 올라왔다고 했다. 근무시간에 개발지 땅을 보러 나가 자리가 텅텅 비었다니….

그 대담하고 솔직한 답변, 그것은 그 지방의 기질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몇칠 후 부임, 인사차 상경하려는데 국장, 과장, 계장이 번갈아 들어오더라고 했다. 결재 판에서 봉투를 내놓는데 여수(旅需), 미의(微意), 미성(微誠)이라 써 있었다. 부임 후 첫 출장이니 장관, 국과장과 식사는 해야 할 게 아니냐며 만만치 않은 액면이 들어 있더라는 것. 충청인에게선 볼 수 없는 모양새였다고 회고했다. 충청인의 경우 출장 시 법정여비에 국, 과장이 얄팍한 봉투를 내밀며 부속실 여직원이 눈치챌까봐 두리번거린다고 했다.

속 호주머니에서 조심스레 내놓는 얄팍한 봉투….
이렇듯 모양새가 다르더라며 회고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예술작품으로 점잖게 상납하는 고장, 그보다는 세상 그런 게 아니냐며 현찰을 내미는 지방, 작지만 최소한 예의를 지키려는 충청인과는 기질에 있어 이렇듯 다르다.

60~70년대 옛날이야기다. 그 때는 그것이 예의요, 관행이기도 했다. 또 그것을 어느 기관이 적발을 해도 죄악시하지 않았다. 시시콜콜한 구시대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지방 나름의 풍속과 기질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지엽적인 사례요, 단면이지만….



뚝심만이 미덕은 아니다

어느 지방엘 가도 토착성(전통)이 있음으로 해서 기질상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완벽이라거나 ‘절대선’이란 존재치 않는다. 충청인 기질은 매우 합리적이며 온화하고 영남인은 강직하고 남성적이며 호남은 끈질긴 면과 섬세성 그 위에다 사교적인 면이 있다. 이야기를 되돌려, 충청인 기질은 마냥 나약하기만 하고 매사에 피동적인가? 그렇지 않다.

충청인은 느슨한 기질 탓에 늘 뒷전이며 제 밥도 못 찾아 먹는다고 비아냥거리는 걸 지난날, 우리는 지켜봤다. 그런 탓에 중앙에서 예산을 따오는데도 늘 후열에 낀다며 ‘로비’ 능력부족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매사에 매우 적극적이다. 옛날 타 시도는 예산을 따오는데 별의별 수법을 동원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서울에 사무관 한사람을 연중 고정배치, 일상 예산부처를 드나들며 심지어 담당관 집안사정을 살핀다고도 했다.

아들이 대학엘 진학하면 화환과 금촉만년필도 보내고 백일잔치까지 챙기는 바람에 집무실에서 만나면 서로 표정이 밝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구시대 풍속으로 정상적 행위는 물론 아니지만 적극성만은 눈 여겨 볼 대목이다. 이와 같은 풍속도는 앞으로 있어서도 안 되고 또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반대로 충청도 공직자를 접하면 어쩐지 부드러워 보이질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 충청인은 훨훨 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니까 옛날이야기다. 어떻든 타시도의 적극성, 앞서려는 기상, 이런 것은 한 가닥 참고로 해두는 게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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