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는 두 가지 양상이 있다. ‘관조적 삶’과 ‘노예적 삶’이 그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관조란 지식의 최고 상태이다. 관조적 삶은 자유의 삶이다.
자유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관조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교통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대단히 아름답고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혼자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불안해 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혼자 있다는 것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확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에 기여하기 위하여 직장생활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직장을 잃거나 정년이 되면 할 일이 없게 되고 따라서 자기 삶의 의미가 없어지고, 사회 기여의 기회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생계도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즉 정년이 두렵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삶의 두 가지 양상이 선명하게 갈라지는 것이다. 정년이 되면 생계가 곤란해진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할 일이 없어진다는 말은 너무나도 서글픈 인생 항변이다. 여행을 하고 독서를 즐기며 저술을 하고, 무엇보다도 자유와 고요를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도대체 자유와 고요처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직업으로서의 교직은 무척 매력있는 분야다. 가르치는 일보다 더 소중하고 값진 것은 없을 것이다.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깨닫게 하고 전혀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입문시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무엇보다도 자유의 길과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해줌으로써 배우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일은 지고한 작업이다. 반 평생을 교직에 몸담았다가 홀연히 떠나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보람 있는 과업은 연부역강한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이제 새로운 세계를 향해, 보다 큰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나아갈 일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