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독일 출신의 작가 미카엘 유에르크는 세계 제1차 대전이 한참이던 1914년 크리스마스에 벌어졌던 이야기를 ‘세계대전 당시의 작은 평화(The Little Peace in the Great War)’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이 책을 통해 1세기 전의 유럽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1914년 6월 28일, 한 세르비아 청년의 권총이 불을 뿜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그 총탄에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이 유럽을 전화에 휩싸이게 하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 무렵 프랑스 북부의 플랑드르 지역에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과 독일군이 전선을 형성한 채 대치하고 있었다. 깊이 파놓은 참호는 무릎까지 물이 찬 진흙 구덩이어서 최악의 상황이었고 어느 쪽도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해 사상자만 늘어갔다.
참호 안은 극도의 긴장과 피로가 지배했고, 병사들은 적군의 총탄과 함께 질병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여느 때처럼 크리스마스 전날에도 참호 속에서 추위를 떨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독일군의 공격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던 영국군 병사들의 귀에 독일군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이 노래가 영국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심리전을 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합창으로 변해가는 이 노래는 독일어로 부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다. 영국군 쪽에서도 한두 명씩 영어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어 한 독일군 장교가 스코틀랜드의 민요인 ‘애니 로리’를 불렀다. 이 노래가 끝난 후 독일군 장교가 일어나, “나는 장교다. 쏘지 마라. 이제 참호 밖으로 걸어 나가겠다. 영국군중에서도 장교가 한 사람 나와 달라”고 외쳤고, 곧 영국군 하사가 나왔다. 둘은 만나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약 1000명의 병사들이 ‘크리스마스 휴전’에 동참했고, 이 소식은 순식간에 전선에 퍼졌다. 결국 벨기에 북쪽 뉴포오트 항구 부근에서 이프레 마을까지 약 40㎞에 달하는 전선에 배치된 양측 군인들이 ‘크리스마스 휴전’에 들어갔다.
이들은 양측 전사자들의 시체를 모아 합동 장례식을 치르고, 돼지고기를 요리해 나눠 먹고 토끼사냥도 했다. 또 영국군 이발사는 담배 몇 개비씩을 받고 오는 모두를 이발해 주었다. 또한 독일군은 케이크와 소시지를, 영국군은 잼과 위스키를 나누며 서로에게 가족사진을 보여주었고, 병균을 옮기는 이와 쥐를 효과적으로 퇴치하는 법도 교환했다. 뿐만 아니라 양측 병사들은 넓은 벌판에서 영국군이 제공한 가죽 공으로 축구경기를 벌였다. 얼마 전에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줬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 비슷한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발적인 ‘크리스마스 휴전’ 소식을 접한 양측 사령부는 경악하여 참호에로의 복귀를 명령했고, 안타깝게도 야만의 전쟁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아직도 한반도와 세상 곳곳에서 보이는, 보이지 않는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배아줄기세포의 진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이려는 살벌한 게임에 우리 모두가 병들어 가며 힘겨워 하고 있다. 이 즈음에라도 이웃을 향해 겨누고 있는 모든 무기를 해체시키고, 본래의 따뜻한 인간으로 돌아가 힘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의 참 평화를 되새기며 나누는 ‘크리스마스 휴전’을 잠시라도 가졌으면 하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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