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오로지 ‘부어라, 마셔라’라는 말로 송년회 세상을 지배해온 주(酒) 나라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연말, ‘참살이(웰빙)와 나눔’이 주군(酒君)만이 독점해오던 송년회 문화의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20∼30대 젊은 층에서 불고 있는 참살이 열풍과 40∼50대층에서 일고 있는 나눔의 송년회 문화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인라이너 동호회서 색다른 행사 마련
살사댄스. 클래식기타 등 개인기 뽐내
다양한 사람. 문화의 만남 재미 더해
모회사 편집디자이너인 김경민(31)씨.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과 함께 도심 한 곳에 있는 모델하우스를 찾는다. 목도리와 장갑 등 월동장비를 총동원할만큼 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발걸음만은 가볍다. 김씨가 일주일에 네 번씩이나 찾는 이곳, 바로 송년회 행사에서 선보일 춤공연 연습장이다.
올해로 벌써 다섯번째다. 그가 속한 동호회, ‘한밭인라이너’가 매년 연말 때마다 색다른 송년회를 마련한지 횟수로 5년째다. 대부분의 동호회가 연말, 주로 ‘술’과 인연을 맺는 것과 달리 이 동호회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회원간의 결속을 다진다.
올해에도 춤과 함께 클라리넷, 클래식 기타 공연을 비롯해 준비한 내용만해도 열손가락을 넘는다. 물론 정식 공연날에 술이 빠지진 않지만 최소한 술에 빠지진 않는다. 모임의 주(主)는 회원들이지 주(酒)가 아니기 때문이다.
10평정도 되는 공간에 어깨를 잔뜩 움츠린 탓인지 회원들의 몸이 굳어있다. 모두 12명, 20대 3명을 제외하곤 모두 30대다. 직업도 다양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비롯해 연구원, 영양사, 엔지니어, 대학원생 등 모두 ‘인라인’이 맺어준 인연들이다.
김씨가 올해 참가하는 공연이 바로 춤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살사댄스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라 몸놀림이 그나마 유연하다. 생각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김씨 뿐 아니라 회원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몸을 흔들고 있다. 시종일관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을만큼 화기애애하다.
동호회 박병한 총무는 “매년 회원들 스스로 직접 참여하는 색다른 프로그램을 마련해 송년회를 연다”며 “물론 술도 좋아하지만 술 때문에 모인 사람들이 아닌만큼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연말을 보내는게 훨씬 좋다”고 말했다.
갑자기 초등학교 교사인 한 회원의 ‘엄한’(?)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회원들의 움직임 또한 빨라진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열심히 실력을 뽐낸다.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조화롭기도 하다.
김씨는 회원이 된지 6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동호회 경력은 화려하다. 살사댄스를 비롯해 스키, 스쿠버다이빙, 여행, 인라인 등에 이르기까지 사계절 내내 동호회에 푹 빠져 지낸다. 20대 후반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의 연말에 술이 빠진 날은 없었다.
하지만 동호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연말은 물론 그의 생활 전반에 변화가 왔다.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술자리와 그로 인해 아침마다 겪는 고통이 사라진 것이다. 대신 그 자리는 정신과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스포츠와 문화생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등으로 가득 채워졌다. 물론 그만큼 경제적인 어려움도 다소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현재 자신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생각보다 내 자신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며 “송년회하면 떠오르는게 일반적으로 술이지만 이제는 나만의, 우리만의 색깔있는 송년회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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