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진의 충청비사] 34 대전의 성장을 주도했던 신문

[안영진의 충청비사] 34 대전의 성장을 주도했던 신문

  • 승인 2005-12-15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 60년대 초부터 중도일보가 내걸었던 14개 개발사업중의 하나인 정부청사 대전유치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돼 현재 대전 둔산 신도시에 3청사가 자리해 있다.
▲ 60년대 초부터 중도일보가 내걸었던 14개 개발사업중의 하나인 정부청사 대전유치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돼 현재 대전 둔산 신도시에 3청사가 자리해 있다.
지역개발 위해 달려온 한밭벌의 기수 정부청사 대전유치 등 14개 사업 정해
60년대부터 적극 추진... 대부분 성공 고 이웅렬 사장 개발위 발족 적극 주도
계룡산국립공원사업 DJ가 제동걸기도


1951년 닻을 올린 중도일보는 일찍이 ‘지역사회 개발’을 내건 신문으로 독자에겐 기억되고 있다. 60년대 중반 신문사 간판 옆에는 각종 개발사업 팻말이 아래처럼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① 정부청사 대전유치 ② 서산 A·B·C지구 간척 ③ 농민의 집 건립 ④ 대삼선(大田 - 三千浦), 조판선(鳥致院 - 板橋) 철도 ⑤ 철도 공작창 유치 ⑥ 충무체육관 건립 ⑦ 아산만 지역개발 ⑧ 대전교육대학신설 ⑨ 금강유역개발 ⑩ 대전공업단지 조성 ⑪대전 고법, 고검 신설 ⑫ 충청은행건립 ⑬ 비인(庇仁) 임해공단 조성 ⑭ 계룡산 국립공원승격 등이었다.

그 때 내걸렸던 간판들은 지금도 소중하게 사옥 안에 내걸려 있다. 김원식 현 사장의 의지라고 했다. 중도일보의 전통을 지킨다는 뜻인 것이다. 그 사업을 추진하고자 위원회를 구성한 건 1966년 6월 11일이었다. 그때 이웅렬(작고) 사장은 신들린 사람처럼 앞장을 섰고 사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 개발위원들은 회사 사장실, 아니면 중구청 어린이 놀이터 옆 사장의 집에서 주로 만났다.

그 자리에는 이사장과 조장천 교수(사학), 姜신업(충남대 교수), 도청 공무원 출신 김수영씨가 늘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러면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필자는 사장의 방송원고 대외연설문, 신문발표문을 전담한 ‘라이터’ 역을 맡는 바람에 추진위의 구성, 표방과 활동상을 가까이서 지켜 볼 수 있었다. 그 바람에 70년도엔 ‘유럽·東南亞의 印象’ 부록, - 나와 지역개발 10년 - 이웅렬 著라는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어디에서 전수받은 개발론이며 이론체계인가를 생각해 본다.


매일 만나는 조장천 교수는 사학자라지만 샤머니즘 쪽에 푹 빠져있는 인물이고 姜신업 교수는 토목 쪽이라 총괄할만한 위치가 아니며 김수영 씨는 사무관 출신으로 총무일만 맡는 형편이었다. 그럼 이사장에게 의욕을 불어넣은 건 누구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일본 쪽이다.

이사장은 오사카(大坂), 간사이(關西)대학 출신으로 5·16후 한일국교가 트자 그곳 동창들이 자주 찾아왔고 이사장 역시 가끔 일본을 내왕했다. 이때부터 지역개발에 열을 올려 주변에선 신들린 사람 같다는 말들을 했다. 그 무렵 우편으로 보내오는 관련서적은 모두 필자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일본을 다녀와 선물로 받은 서적으론 노벨상 수상자 가와바타(川端康成)의 소설집과 아사히(朝日)년감 등인데 지금도 그 책자들을 간직하고 있다.

“받은 척 말라구! 시기하는 눈도 있으니까….” 그때 받은 책 중엔 요시카와(吉川英治)의 ‘삼국지(12권)’가 있는데 그것을 필자가 번역, 72~73년까지 중도일보에 연재하다 통폐합으로 중단된 소설이다.
‘백치(白痴)의 잠꼬대’라 비아냥



지금도 삼삼하게 눈앞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나카다니(中谷忠治)라는 일본농림성 고위관료출신이 64년도 중반부터 자주방한(내전)을 했고 이사장과는 밤을 지새우며 환담을 나눴다. 그는 해방직전 충남도청에 재직한 바 있는 관리였으나 매우 박식한 인물이었다. 문필실력 또한 대단해서 중도일보에 ‘한국의 인상’이라는 글을 연재한 바 있다.

사물을 놓고 분석하는 눈은 더없이 정확했고 간결한 문장에 유니크(Unique)한 표정관리까지 할 줄 아는 그런 인물이었다. 지금 기억으론 1개월 이상 필자의 번역으로 연재하다 모처의 중단지시(?)로 끊은 일이 있다. 그러니 나카다니로부터 많은 조언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모교인 간사이(關西)대학으로부터 지식을 전수받은 것으로 보아진다.

어떻든 개발위가 발족하며 방송과 신문이 떠들어대자 못지않게 거센 반응이 몰아닥쳤다. 반대하는 측의 비방은 이런 것들이었다.

“아니, 나라(정부)도 못하는 일을 일개 지방지가 시퉁머리 터지게!”
“이사장 그 사람,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냐?”
“기자들 월급이나 잘 챙겨줄 일이지, 정부청사를 끌어와?”

그 무렵 어느 소설가는 이사장을 겨냥 ‘녹슬은 태양’이라는 소설로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부사장 S씨는 기자들 월급걱정은 않고 뜬구름 잡는 구호만 외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또 사장과 사이가 불편했던 편집국장의 말이다. “영웅이 되고 싶은 게지. 이사장이…. 나폴레옹이 무지개를 쫓아 지중해로 갔다더니….” 그 무렵 정보기관에서도 정부청사를 남으로 옮긴다면 군의 사기저하와 국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그 때 여러 사업 중 비교적 가벼운 계룡산국립공원화 문제를 놓고도 말이 많았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일삼는 계룡산 사교집단을 미화, 양성시키려는 저의가 아니냐는 항의가 들어왔다. 이렇듯 개발 사업은 초기부터 비난과 야유로 뒤범벅이 되어 순탄치가 않았다.

어느 신문에선 ‘백치(白痴)의 잠꼬대’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이렇듯 개발 사업은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꼴이 되었지만 굴하지 않고 이를 추진하는데 앞장을 섰다. 지역개발사업은 이렇듯 시발부터 가슴 아픈 일, 그리고 엉뚱한 일이 터지기도 했는데 14개 사업 중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질 것으로 믿었던 계룡산 국립공원 사업마저 시련을 겪었다.



추진사업마다 우여곡절



60년대 중반, 계룡산 국립공원 승격추진위가 발족을 했다. ‘정부청사 대전유치’나 ‘서산 A·B·C간척’ 같은 건 너무 큰 사업이 되어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데서 가벼운 사업부터 손을 댄 것이 바로 계룡산 국립공원사업이었다. 그래서 속전속결을 한다는 뜻에서 세차게 밀어붙였다.

명산 계룡의 역사(신도안)와 사찰, 그리고 생태계를 조사, 집대성했다. 그리고는 이어 정치권에 접근, 현역의원들을 찾아다니며 당위성을 역설했다. 국회에서 통과해야 된다고 해서 당시 공화당(여당)실세, 김용태, 吉재호, 그리고 박병배(통일당),신민 당실세인 충북의 이충환 의원까지 국회로 찾아가고 때론 꼭두새벽에 숙소를 찾아간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바람에 정치인들도 수긍을 하기에 이르렀고 몇일날 통과시킬 테니 걱정 말라고 다짐까지 받았다. 이들 거물의원들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 바람에 신문사는 호외(號外)준비를 해 놓고 기다렸다. 조촐한 파티를 위해 막걸리 통도 들여다 놓고 기다리는 중인데 서울지사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통과’가 아니라 ‘부결’이 되었다고 했다.

아니 이럴 수가…. 공화당이 밀어붙여 안 될 일이 없지 않은가. 또 뚝심의 사나이 김용태가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이어 서울에서 속보가 날아왔는데 이를 부결시킨 것은 당시 야당의 입이요, 대권후보인 김대중이 일을 망가트렸다고 했다. 여기서 DJ를 향해 연일 사설, 가십, 정치면 기사로 그를 꼬집었다. 그때는 지방지도 부산총국 300부, 목포 50부, 광주 100부, 대구 200부 하는 식으로 중도일보 지국이 있을 때였다.

기사내용은 얼마간 분풀이 성격을 띤 것이었다. 비정치적인 국립공원 승격 같은 걸 부결시키는 야당 지도자라면 그가 대권을 잡으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그토록 옹졸한 야당지도자’라면 ‘출신구(호남)밖에 대변 못할 작은 그릇’ 아마도 이런 논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듯 연일 포문을 열고 있는데 서울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이어 야당도당사무실에서 전갈이 왔다.

DJ가 단독 신문사를 방문한다는 내용이었다. 오후 2시, 약속대로 은행동 ‘미락’일식집으로 갔다. 이쪽에선 사장과 필자 둘이었는데 정각에 DJ는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처가동네를 왜 해쳐?’

술자리에서 DJ를 만난 건 그 때가 처음이지만 먼발치에선 취재를 통해 여러 번 본 일이 있다. 그가 야당 대변인 시절 윤보선 후보 지원 유세, 한·일 국교 반대 시위 그리고 박정희와의 대결 때 충무체육관, 목척교 천변에서 사자후 하는걸 걸 봤다. 그는 타고난 논객이었다. 아니 타고난 선동연설가였다.

필자가 군에 있을 때 강원도(인제, 김화, 양구)에서 여당의 거물 ‘윤임술’과 맞붙어 싸우는 걸 봤다. 윤임술의 입심도 보통이 아닌데 DJ는 한 수 위였다. 그때는 ‘김대중’이 아니고 ‘김대仲’이라 포스터엔 나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미락에선 거의 5시간에 걸쳐 술을 마시며 세상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사장은 필자를 향해 말했다. “저사람(DJ) 일 낼 사람이로군. 몸짓하며 입담(논리) 그리고 저 눈을 보라구! 눈빛이 범을 닮았어.”

DJ는 국립공원 계룡산 건(件)을 쳐 둥글린 건 바로 자신이라고 실토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공화당이 시급한 민생문제, 그리고 각종 예산을 제 멋대로 요리하는데 장난질을 하는 걸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국가적인 사업, 시급한 예산 배정, 민생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이는 놔두고 맨 머리에 계룡산 문제를 올려놓았길래 쳐 둥글렸다고 했다.

수긍이 가는 설명이었다. 공화당 입장에선 신문사가 하도 귀찮게 구니까 마지못해 첫 안건에 올려놓았을 게 분명하다. 여기서 필자는 처음들은 말이 있다. DJ는 그때 그야말로 정열이 펄펄 넘치는 그런 모습이었다. 두툼한 손바닥으로 필자의 손등을 잡으며 “여보. 안부장! 내가 왜 처가 동네를 도와주진 못할망정 해코지를 하겠소? 내 처가 서산 아닙니까?” 그때 비로소 DJ처자가 서산인줄 알았다. 일제말까지 병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DJ는 서산에서 거의 진일이 없었던 걸로 짐작된다.

60년대 초부터 내걸었던 ‘지역사회개발의 기수’ 중도일보…. 14개의 현안 중 대부분은 소망을 이룬 사업들이며 불발에 그친 게 있다면 비인만(庇仁灣)개발과 가로림만(加露林灣) 조력발전 정도가 될 것이다. 정부청사 대전유치만 해도 ‘3청사’가 이미 내려와 정착을 했고 행정수도가 조치원 - 공주사이에 들어서게 됐다.

충청은행은 오늘의 ‘하나은행’으로 발전했고 ‘대삼선’과 ‘조판선’은 고속도로로 대체되어 국토의 대동맥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서해 A, B, C지구 간척 사업은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이 마무리 한 것으로 지도를 바꿔놓은 세기적인 공사였다. 지평선을 이루는 광활한 농지, 인력으론 어쩔 수가 없어 헬기를 동원, 파종하는 그런 터전으로 변해 있다. 그리고 수십 수백만 마리의 철새도래지가 되어 농경 말고도 관광명소로 탈바꿈, 복음이 울려 퍼진다. 역사는 흐르고 당시 주역들은 퇴장했지만 그 발자취는 길이 남을 것이다. 아울러 중도일보는 전통을 이어받아 영원하리라 믿는다.
▲ 1970년에 준공된 충무체육관 조감도.
▲ 1970년에 준공된 충무체육관 조감도.
▲ 1968년 충청은행 개점을 기념하기 위해 고 이웅렬 사장이 은행 정문 앞에서 찍은 사진.
▲ 1968년 충청은행 개점을 기념하기 위해 고 이웅렬 사장이 은행 정문 앞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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