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예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태어나시던 밤 인근 동산에서 밤의 별빛 아래 떨면서 양 무리를 지키고 있던 목동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 탄생의 첫 소식을 전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날 밤 목자들이 천사의 입을 통하여 들었던 소식은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는 것이었다. 목자들이 전해들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한마디로 예수께서 세상에 탄생하셨다는 것이다.
왜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이 기쁜 소식이고 좋은 소식일까? 가난에 찌들고 천대와 멸시에 면역이 되어버린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이라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었다든지 신분이 갑자기 바뀌어 당시 국회의원 격이던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 자리라도 하나 얻게 되었다든지, 아니면 임금 시위대장으로 발탁이 되었다는 소식이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것도 말구유에 태어났다는 소식이 어떻게 목자들에게 기쁘고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예수가 구원의 주로 나셨다는데 이유가 있다.
역사를 건지시는 분,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건지시는 분,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인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 시키시는 분, 그 분이 구주 예수이시라는데 큰 소식의 핵심이 있다.
네 살 난 여자 아이가 길에서 울고 서 있었다. 길을 잃고 서 있는 아이였다. 파출소를 거쳐 미아 임시보호소로 인계되었다. 예쁜 여직원이 눈물을 닦아주고 예쁜 인형을 안겨 주면서 울지 말고 놀고 있으면 엄마가 곧 온다고 달랬다. 자동차도 딸랑이도 피아노도 주었다. 잠시 울음을 그친 아이는 이내 엄마 생각이 났던지 또 울기 시작했다. 이 아이의 떼를 들어 멈출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 있다면 엄마가 왔다는 소식일 것이다. 엄마가 나타나 “내 아가야 엄마다” 하며 품에 안아 주는 것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 것이다.
고독한 인생, 답답한 인생, 소외당한 인생, 공허하고 실의에 빠진 나에게 필요한 분은 바로 예수 그 분 자체이시다. 주 예수 보다 더 좋은 분은 없다. 사람들에게 멸시와 무시를 당하는 세리와 죄인들 곁에 머무르며 함께 식사하고 함께 대화하고 함께 어울려 삶을 나누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으면서까지 항상 곁에 있어 주신 너무나 인간적이고 좋은 예수. 오직 비천하고 가련한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 하시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시고 집중하셨던 예수. 예수보다 더 큰 위로 더 큰 소식은 세상에 없다. 그것은 오직 예수 한 분만이 우리를 위해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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