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택 논설위원 |
소설가 최일남 선생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일년 열두 달 허황되게 나부대던 자신을 다그치고 옭아매는 그런 의미로도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허위허위 달려온 숨가쁨을 다독거리고, 미구에 맞을 새로운 해를 겨냥하면서, 잠시 스스로를 되새겨보는 그러한 시간의 빛깔”이다. 그런데 올 겨울은 회색치고도 검디 검은 짙은 회색의 느낌이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를 둘러싼 논란으로 국민의 긍지가 망가지는 꼴을 봐야 하는 심정은 비통하다. 과학세계를 헤집고 다닌 방송전문가의 과욕과 무지가 빚은, 다시 있어선 안 될 사건으로 매듭지어 지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줄기세포가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다. 그건 서울대 검증팀이 밝혀줄 것이니 진득이 기다리면 될 거고, 무엇보다 이해되지 않는 건 PD수첩팀이 연구원들을 취재했을 때의 살벌한 분위기다. “황 교수는 구속되고 세상이 바뀔 것”이라며 그들이 쏟아낸 말들은 증오와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 “죽이러 왔다”니, 꼭 그런 말을 해야 취재가 됐을까.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미움의 근원은 도대체 뭘까.
기성의 권위를 부정하는 ‘개혁코드’, 과거를 뒤집고 헤쳐보는 ‘진실코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땅은 증오의 먹구름이 뒤덮고 있다. 지역간, 계층간, 노사간 갈등에서 비등(沸騰)한 증오심으로 좁은 한반도는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 정치권은 증오심을 어루만져 풀어주기는커녕 걸핏하면 기득권과의 전쟁이라는 말로 갈등과 분열을 부추긴다. 두산그룹 형제간 분쟁을 보면 ‘형제는 전생의 원수’라는 말이 실감난다. 학교의 ‘왕따’며, ‘책상분노’(Desk rage)로 불리는 직장내 증오심도 심각한 문제다.
사실 분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런 시대가 어디 있으랴. 분노의 감정 그 자체를 탓할 수도 없다. 정당한 분노도, 의로운 분노도 얼마든지 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프라소크의 시구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분노의 과잉, 분노의 만연, 분노의 남용이다. PD수첩은 증오의 끝이 어떤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질투와 폭력의 심성은 결국 대한민국을 불신의 나라로 만들고 순수한 열정의 과학자들을 범죄자로 몰아갔다. 결과는 비참하다. 내민 칼은 스스로를 베었고, 그들이 속한 사회를 베었으며, 우리 사회 곳곳에, 나아가 국민 모두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증오의 수위로 보자면 지금 나라와 사회가 금방 깨질 것 같은 다급한 수준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는 나중에 따지자. 증오를 녹여내는 게 급하다.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부른다. 증오 바이러스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증오심에서 벗어나는 길은 공감, 이해, 용서다. 특히 진심 어린 사과가 중요하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이웃간에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건네자. 윗사람, 잘사는 사람, 힘있는 사람이 사랑의 손을 내밀면 더 좋다. 최소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만이라도 희망과 화해를 생산해 내야 한다.
이번 세모는 부디 화해와 용서의 마당이 되었으면 한다. ‘미움의 씻김굿’을 해봤으면 하는 것이다. 미움의 언어를 버리고, ‘예(禮)는 다른 것을 위해 있고, 악(樂)은 같은 것을 위해 있다’(예기)는 말이 상징하는 진정한 화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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