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과 음식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한의학적으로 말하면 기미의 편차가 다르다. 기미(氣味)는 본초학에서 약물의 효능을 서술할 때 사용하는 부호이다. 기는 온열량한(溫熱凉寒)의 네 가지 속성을 말한다. 약물 자체의 물리적 온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주로 약물을 사람이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변화에 의해 해당 약물의 기가 결정된다.
미는 산고감신함(酸苦甘辛鹹)의 다섯 가지 맛을 말한다. 미를 결정하는 것은 약물이 가지고 있는 실제의 맛으로도 결정되지만 어떤 약물들의 맛은 해당 약물을 사람이 복용했을 때 작용하는 바에서 유추하여 결정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오행(五行)이론이 추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약은 음식에 비해 기미의 편차가 좀 더 크고 뚜렷하다. 이를 사람들에 비유하면, 음식은 개성이 비교적 둥글둥글해서 다른 사람들과 두루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약은 개성이 비교적 강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종종 충돌이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되겠다. 따라서 음식은 비교적 많은 양을 섭취해도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은 드물지만, 약은 유효용량보다 많이 섭취하면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음식은 대부분 양념을 가하거나 다른 재료와 섞어서 만들어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미의 편향을 조정해서 중화시킨 음식이 있는가하면 특징적인 기미의 편향을 더욱 두드러지게 해서 특징적인 작용을 하게끔 만들어진 기능성 음식도 있다. 예를 들어 해물파전은 해물의 찬성질과 파의 따뜻한 성질로 조화를 이룬 음식이며, 삼계탕은 닭의 따뜻한 성질을 인삼과 황기로 더욱 보강한 음식이다.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음식 선택에서도 자신의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 음식을 선택할 때 신중을 기하는 것은 좋지만, 세상의 모든 음식에 대해 체질별로 분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일부 식품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또는 한의사마다 체질로 분류한 내용이 다를 수도 있다. 이는 기미의 편차가 미세한 식품까지 특성을 따지다보니 일어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으며, 한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음식은 약이나 독과는 달라서 약간의 용량변화에 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자신의 체질에 맞는 식이를 하되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 체질에 가장 잘 맞는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체질에 상반되는 식품을 피하는 게 더 중요하며, 체질별 특징에 맞는 식단을 짜는 대강의 요령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즉, 속이 더운 태음인이나 소양인이라면 주로 담백한 음식을 선택하면 좋고, 속이 찬 소음인이라면 따뜻하고 양념이 잘 되어 있는 음식을 고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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