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북처럼 생겼으며 세워놓고 손으로 두드리는 ‘둥둥’, 실로폰 같이 생긴 ‘발라폰’, 반쪽의 북같이 생긴 ‘젬베’ 등 세 악기가 건장한 흑인 청년들에 의해 쉴새없이 다양한 리듬으로 두드려지고 관객들은 끊임없는 박수로 화답했다. 연주자나 관객이나 두드림으로 하나가 되는 신명나는 한마당 이었다. 연주자들처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듯한 착각도 들었다. 잠시나마 아프리카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 수 있는 기회였다.
지난 가을 제주도 중문에 있는 아프리카박물관을 찾았을 때 지하 공연장에서 겪었던 감동이다. 서귀포시 대포항의 국제컨벤션센터 앞에 위치한 아프리카박물관은 외관에서부터 관람객을 압도한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흙으로 지은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인 서아프리카 말리공화국의 젠네 대사원 모양을 그대로 본따 지었다.
그 안에는 사진작가 김중만의 ‘아프리카인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여러 아프리카인들의 모습과 얼굴들이 전시된 것을 비롯, 다양한 아프리카 미술과 아프리카 가면 등을 통하여 아프리카 문화를 관람객의 가슴 속에 전해주고 있었다. 실제 아프리카에 갔을 때보다도 더 진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다양한 콜렉션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제주도와 아프리카는 ‘자연’ 이라는 키워드를 사이에 두고 새로운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산과 바다와 투명함으로 통하는 제주도, 생명과 영혼과 투박함으로 통하는 아프리카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세계화와 국제화가 우리 일상의 화두가 된 상황에서 ‘남에 대한 이해’ 특히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아프리카박물관은 우리에게 낯선 아프리카를 가깝게 느끼게 해주는 ‘살아있는 아프리카’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수년전 경기도 벽제의 ‘중남미박물관’에 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문화적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세계화로 가는 길목에서 아프리카박물관이나 중남미박물관과 같이 ‘타자성(他者性)의 이해’를 가꾸는 작업은 매우 빛나 보인다. 이들 작업은 자신의 사명감 때문에 한다고 하여도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다. 국가 차원에서 그들의 노고를 인정해주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때마침 지난달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연일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아직 많은 사람은 호기심에서 찾는다해도 이제 우리 국민들 사이에도 문화를 배우고 즐기려는 분위기가 성숙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분위기가 전국 방방곡곡 개인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사설박물관에 대해서 우리 정부가 좀 더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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