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3년 385만 달러로 초라하게 시작했던 충남도의 수출은 79년 7억 달러를 달성한 이후 26년만인 올해 335억달러를 달성하게 됐다. 이는 쿠웨이트(255억달러), 칠레(325억달러)의 수출보다 많고, 아르헨티나(364억달러), 이스라엘(385억달러)에 근접함으로써 한 국가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험난하기만 했다. 할머니들께서는 모처럼 자른 머리카락조차 버릴 줄을 모르셨고, 대부분이 농민의 딸이었던 우리의 누님들은 좁다란 골방에서 하루에 10벌도 넘는 와이셔츠를 만드셨다. 피곤한 몸으로 자취방에 든 어떤 누님은 꽃조차 피워보지 못한 채 연탄가스에 희생되기도 했다. 초라했던 우리 수출의 시작이었다. 그 후 오늘날까지 난관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도 선진국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를 견제하고 있으며, 중국은 우리나라의 수출품을 손에 넣은 지 열흘이면 모방품을 만든다 하지 않는가?
일찍이 기마 민족의 웅대한 기상을 지녔던 우리민족은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벼농사를 주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쌀 생산은 민족최대의 산업이자, 오랜 배고픔의 서곡이었다. 물은 많아야 했지만 홍수는 피해야 했고, 바람은 있어야 했지만 태풍은 비켜가야 했다. 용케 이들을 피해도 병충해와 냉해가 언제나 조상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근목피’, 이건 우리 아버지들의 오랜 아픔이자, 민족의 한이었다. 이런 삶의 질곡을 추억으로 돌릴 수 있게 만든 건 바로 수출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제 배고픔은 해소되었으니 배아픔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그리 설득력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에게 2등은 없다. 정치에는 형평과 균형이 있지만, 경제에는 효율과 경쟁력뿐이기 때문이다. 한 반의 모든 학생이 우등생일 수는 없다는 건 이미 증명된 지 오래다. 그래서 수확 후의 나눔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농부가 쌀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여든 여덟 번의 손이 가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외면해서도 잊어서도 안 되지만,그렇다고 수출을 위해 땀 흘린 이들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훼손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한없는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끔 배려해야한다.
지난달 아산에 있는 삼성LCD는 1조 4000억원 매출에 10억 달러가 넘는 수출실적을 달성했다. 우리 도의 LCD산업의 기술 수준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제일이다. 이 실적 뒤에는 많은 협력업체들의 뒷받침이 있었으며, 이 숫자 하나 하나에는 젊은이들의 땀과 노력이 배어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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