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언론의 정체성 확인과 처절한 자기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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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언론의 정체성 확인과 처절한 자기반성

  • 승인 2005-12-07 00:00
  • 최정규 편집부국장최정규 편집부국장
▲ 최정규 편집부국장
▲ 최정규 편집부국장
요즘 온 세상이 어지럽다. 황우석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진실논쟁 때문이다. 황 교수는 다 알다시피 줄기세포로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을 활짝 연 국민적 영웅이다. 그 중심에는 누가 뭐라 해도 언론이 있었다. 불과 2년여 전 그의 줄기세포 연구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자 도하 언론들은 들끓기 시작했다.

특종 경쟁은 치열했고 그의 행적은 거의 매일 머리기사로 장식됐다. 궁극에는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벌써 과학계 최초의 노벨 수상자 감으로 운운 될 정도였다. 사실 이 부분에 자유로운 언론은 찾기 힘들다. 너나 할 것 없이 속보경쟁에 나섰음은 이미 기록의 역사가 증명한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쯤 되자 호사다마라 할까. 언제부턴가 과학자로서의 궤도이탈을 우려하는 가십성 기사가 지면에 비춰지기 시작했다. 기실 그때까지만 해도 혀를 차며 다소의 시기 내지 질투로 보고 느꼈을 뿐 안중에 없었다. 하지만 황 교수에 대한 애교에 가까운 천착이 증오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MBC PD수첩의 줄기세포 연구의 진의여부에 대한 폭로방송이 예고되자 하루아침에 논조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어디라고 거론할 필요도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혹시하는 의혹의 눈길을 쏟아냈다. 여기에는 객관적 실체에 대한 정확한 보도라는 언론 본연의 자세마저 뒷전이었다. MBC는 물론 방송, 신문, 통신 등 거의 모든 매체가 자기 확신 보다는 인용부호를 써 가면서 의심에 의심을 높여갔다. 이 땅에 존재하는 언론은 일순 순한 양에서 하이에나떼로 변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적 영웅은 희대의 사기꾼으로 이미 바뀌어 가고 있었음은 불문가지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 칭송되던 그는 그 순간 발가벗겨진 채 동토의 땅에 버려진 고아에 지나지 않았다. 생명과 같은 연구결과물이 난자의혹에 이어 배아줄기세포 가짜 의혹으로 불거졌기 때문이다. 과학자에겐 그야말로 존재이유를 상실한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때 말없이 보듬고 나온 것이 국민의 여론이었다. 네티즌으로부터 시작된 국민의 힘은 매터도를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 그쯤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방향선회가 이루어지더니 이 어인일인가. 이제는 상황이 180도 바뀌어 황 교수에 의혹을 보낸 MBC에 비난의 소리를 보내고 있다. PD수첩이 협박·함정취재로 윤리강령을 훼손했다며 연일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여기서 두렵고 안타까운 것은 MBC PD수첩의 취재윤리강령 위반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매사를 흑백논리로 보려는 그러면서 자정력 없는 한국 언론의 풍토다. 아직도 우리 언론은 냄비근성이니 하이에나 근성이니 하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사례는 우리 저널리즘의 중심부에서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한국기자협회보는 최신호에서 송년제언을 통해 “ 온통 날카롭다. 뾰족한 글로 벼린 날이 서슬 푸르다”고 적고 있다. 최근 수년째 마치 전쟁터로 변한 신문 지상의 사설란과 칼럼코너에 실린 글들에 대한 독백이다. 협회보는 이어지는 글에서 “글깨나 쓴다는 기자나 논객들은 자나 깨나 표적이 된 흉중을 향해 융단폭격에 십자포화를 날린다. 아침 식탁의 벗 신문에서 글의 향기는 사라지고 저주의 글발만 성성하다”고 자조하고 있다.

사실이 그렇다. 우리 언론은 언제부턴가 편 가르기에 익숙하고 내편이 아니면 공격하는 저격수에 열심 일 뿐이다. 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혁, 수도권과 비수도권, 여당과 야당, 중앙과 지방,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빈과 부 등으로 구분되는 끝없는 편 가름이 그것이다. 매체마다 시대담론은 어디가고 그저 반하는 세력을 난도질하는 독설과 꾸지람 만이 난무한다. 여기에는 주의주장만 가득할 뿐 양심의 심장이나 향기어린 음향과는 거리가 멀다.

기자협회의 송년제언처럼 다시 진득한 문리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맹목적 비판으로 치장한 현학보다는 국민을 무서워하며 책임지는 매체로 거듭나야 한다. 필자도 이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고백하면서 그 길만이 엄동설한의 매듭을 풀고 새봄을 맞는 지름길이 아닐까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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