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국어시간에 ‘우리’에 관하여 배운 적이 있다. ‘우리’는 자신을 포함하여 주변의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어원은 울타리를 의미하는 ‘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덧붙였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서양에서는 항상 ‘나’가 초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어원이 증명하듯이 한 울타리 안의 사람들을 늘 나와 함께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 우리 학교, 우리 집, 심지어 우리 마누라와 우리 남편….”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라는 단어의 다의성에 당혹스럽다. ‘우리’라는 대명사가 지칭하는 지시체가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 수가 없다. 한동안 유행했던 말 “우리가 남이가?”에서 ‘우리’가 담고 있는 경계는 시간적인 것인지 공간적인 것인지, 아니면 사회계층적인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의미적 공감대를 이루었다.
그 후 어느 정당의 명칭으로 ‘우리’라는 말이 사용되었을 때 사람들은 갸우뚱했다. ‘우리’의 의미 영역이 무엇일까. 어느 한 세대에도 어느 한 지역에도 어느 한 계층에도 국한된 것이 아니라면 나라 전체인가... 이 두 경우에는 심기가 불편할망정 절박하거나 비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있었던 ‘우리’ 사회의 사건을 보면 ‘우리’가 가지는 의미가치가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른 지 알 수 있다.
엄마도 아빠도 없이 혼자 살던 21세기 ‘우리’ 사회의 한 소년이 기르던 도사견에 물려 죽임을 당했다. 굶기를 밥먹듯 하던 소년의 빈소에는 조문객의 발길도 없이 쓸쓸히 관만이 놓여 있었다. 미술에 소질을 보이던 ‘우리’의 한 중3 학생이 자살을 했다. 유서에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함으로써 엄마에게 더 큰 짐을 지우는 것이 싫었다는 이야기와 자신이 희생함으로써 그동안 잘해준 누나에게 돌아갈 몫이 커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 두 사건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의미를 공유하며 부끄러움에 얼굴을 화끈거릴 수 있을까 자문했으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또 한편, ‘우리’의 350만 농민은 쌀비준안이 통과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단체시위도 하고 수백리길을 걸으며 고독한 투쟁도 하였다. 23일의 국회통과 여부에 관계없이 그들은 ‘우리’인가 아닌가. 어느 농민이 “‘우리’가 배추를 팔 때는 300원인데 그 배추를 사려면 3000원을 내야 되는 세상이 말이 되나요?”라고 했을 때 그 ‘우리’는 ‘우리’와 같은 ‘우리’인가 아닌가? ‘우리’ 어느 중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는데 가정 여건에 따라 선택을 하게 했단다.
15만원 짜리 국내여행에서부터 70만원 짜리 해외여행에 이르기까지 4단계였다. 그런 것이 수학여행인가? 거기서 무엇을 배우나? 그러한 발상을 하고 행동하는 자들이 정말 ‘우리’인가 아닌가. “‘우리’ 애들 1인당 영어 교육비가 유치원에서부터 중학교까지 치면 족히 1억 원은 들 거예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동네 다 그래요.”라고 인터뷰를 하는 아줌마의 ‘우리’도 ‘우리’와 같은 ‘우리’인가 아닌가. ‘우리’의 의미 스펙트럼이나 의미의 결이 너무 다양하여 너무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그리하여 “중국을 가로질러 동남아를 통하여 입국하려는 탈북자들”이 ‘우리’ 민족인지는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각박한 21세기 한반도는 ‘우리’의 의미가 가리가리 찢긴 “아, ‘우리’의 대한민국’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