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편집국 부국장 |
헌재가 이번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으로, ‘국민투표 위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국민투표를 조건으로 다는 것을 말한다. 심대평 충남지사도 그제 합헌 촉구 기자회견에서 국민투표 가능성을 경계하며 그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헌재가 정말 국민투표안을 내놓을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답안이라면, 헌재로서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결정이며 국가와 국민들에겐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헌재가 어떠한 법리적 근거를 내세운다 하더라도 국민투표를 답안으로 제시한다면 이는 국민들에겐 엄청난 갈등과 소요를 야기할 것이다. 행정도시 건설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지역 간 균형발전이라는 목적에서 추진되는 것이라 해도 여기에 반대하는 수도권의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몫을 빼앗기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충청도 주민들에겐 토지보상을 위한 절차 등 이미 행정도시 건설이 실질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태에서 중단이나 취소란 이제 상상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행정도시 건설처럼 지역 간 이해가 걸린-적어도 상당수의 주민들이 그렇게 여기는-사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이해의 당사자와 지역 간에는 명운을 건 전쟁이 될 게 분명하다. 얼마 전 정부가 방폐장 유치 지역 선정의 수단으로 썼던 주민투표는 그것이 주민 간 갈등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주민투표의 과정에서, 또 끝난 뒤에까지 이어진 폭력과 불화로 인한 깊은 상처는 주민투표가 지니고 있는 위험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헌재는 이번 행정수도 문제를 국민투표로 결정할 경우 초래될 이런 심각한 문제들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헌재가 국민투표안을 내놓는다면, 지역간·국민간 대(大)충돌을 방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무책임한 결정이고, 헌재 자신이 해야 할 답을 도리어 국민들에게 되돌리며 ‘도망가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아주 비겁한 선택으로 평가될 것이다.
헌재가 국민투표를 대안으로 내놓는다면, 행정도시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인 만큼 전국민들에게 물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외견상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행정수도가 아닌 행정도시 건설은 누가 봐도 국민투표의 요건인 ‘국가 안위(安危)에 영향을 주는 사안’으로 볼 수 없다. 현대 국가에서 군(軍)에 대한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머무는 수도(首都)의 위치가 국방상·외교상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따져볼 필요는 있겠으나 정부의 상당수 부처(部處)가 옮겨가는 행정도시가 국가의 안위를 좌우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국민투표안이 어떤 합리적 근거를 가졌다거나 타당성이 있다고 보아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리(法理)나 합리적 근거보다 권력과 세(勢)를 좇아 기득권자들을 편드는 헌재 결정을 우려하는 것이다. 지난번에 ‘행정수도 위헌’ 결정의 근거로 삼았던 관습헌법론도 “우리는 성문헌법의 나라”라고 배운 보통 국민들의 법리와 판단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꼼수였다. 헌재가 기득권 세력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 찾아낸 군색한 이유였다. 법(法)은 본래 약자와 강자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대개는 강자와 기득권의 편이었다.
헌재가 이번 행정도시 문제에 대해서도 위헌으로 결정한다면 지난번 관습헌법론의 연장일 것이고, 국민투표안이라는 또 다른 꼼수를 쓴다면, 관습헌법론보다 더 비겁한 결정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