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단풍이 곱게 들어있어서 신라 천년의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천년 전에도 저 나무들은 저리 고운 단풍으로 옷 입고 사찰에 불공드리러 오는 신라 사람들을 맞이했겠지.
그때의 나무는 지금과 같은데 사람만이 태어나고 죽는 짧은 생을 힘겹게 보낸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생이 새삼 무상하게 느껴졌다. 절의 마당 한 쪽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려 아름다운 가을 고찰(古刹)의 풍경을 더 하고 있었다.
청운교와 백운교 앞에 서서 예전에 어떻게 그 밑으로 배가 드나들었는지 감탄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잿빛 개량한복을 입고 모자를 쓴 사람이 무언가 열심히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알고 보니 자원봉사자로 주말마다 여기에 와서 관광객들에게 절의 곳곳을 재미있고 소상하게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 뒤를 세 시간이나 따라 다니며 설명을 들었다. 대웅전 지붕의 용이 여의주 대신 왜 물고기를 물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고 다보탑에 못 생긴 사자가 한 마리밖에 남지 않은 이유도 알게 되었다.
그뿐인가. 대웅전 관음전 극락전을 두루 돌며 화엄경에 대해서도 한 수 알게 되었다. 참 귀한 시간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뿐께 지면을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 집은 대를 이은 기독교 집안이다. 그리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가톨릭학교를 다니다보니 불교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었다.
그런데 문학을 하다 보니 불교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 문학의 역사를 볼 때 불교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옛 문화와 유적지가 대부분 산간 절에 있다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일이다 서양의 문학이 성서를 근간으로 해서 중세 수도원과 교회에 많이 치우쳐 있다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따라서 모름지기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특정 종교에 관계없이 동서양을 넘나드는 고전을 두루 섭렵해야 할 것이다. 그 중에 성경책과 불경도 반드시 읽어서 사상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겨울의 불국사도 좋다고 하니 잠시 번잡한 일상을 접고 눈 오는 날 기차를 타고 천 년 전 신라로 시간 여행을 다녀와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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