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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철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 |
헌법재판소는 지난 해 10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위헌으로 결정하였다. 헌재가 제시한 위헌결정의 논리는 “관습헌법으로 볼 때 서울이 수도라는 점이 인정되는데,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사실상의 수도를 옮기면서 이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한 헌법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법률을 제정해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는 것이었다.
헌재의 위헌판결 이후 정부는 신행정수도 대신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하였으며 우여곡절 끝에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러나 행정도시 건설특별법에 대하여 이 또한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되었으며 조만간 이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헌법소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행정도시 건설특별법이 헌재가 지난번 신행정수도 위헌결정에서 제시한 관습헌법에 위배되는지의 여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헌재가 위헌결정의 근거로 제시했던 소위 ‘관습헌법’에 대해서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을 해 보자.
헌법은 국가의 근간을 규정하는 최고의 법으로서 주권의 주체인 국민들의 합의를 통하여 제정되며 또한 국민들의 합의가 있을 때에만 이를 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여 주권재민의 원칙을 천명하는 동시에 헌법개정을 위해서는 국민투표라는 특별한 형태의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함을 따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헌법개정은 당연히 주권자인 국민의 몫으로서 그 어느 국가기관도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하여 헌법 규정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가감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규범이라도 헌법에서 규정한 국민투표를 통해서만 헌법규정으로 될 수 있으며 그리고 이 경우에만 해당규범이 헌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 법률의 규정을 해석함에 있어 극히 제한적으로 관습법의 보완적인 효력을 인정할 수 있을지언정 성문헌법을 가지고 있는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관습헌법을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현재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사실로부터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어야 한다”라는 규범을 도출하고 소위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이 규범에 헌법적 효력을 부여함으로써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을 ‘위헌’으로 결정하였다.
우리는 과거 유신체제 하에서 대통령이 소위 ‘긴급조치’라는 이름으로 헌법개정절차를 거치지 않고서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규범을 제정함으로써 국민의 주권과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했던 경험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사실과 규범을 구분하지 못 한 오류 및 서울의 수도로서의 지위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 여부의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헌재가 ‘관습헌법’이라는 이름으로 성문헌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규범을 제정할 수 있다면 이는 유신체제 하에서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헌재가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고서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고 구속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헌재가 작년에 ‘관습헌법’을 내세워 신행정수도건설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행위는 헌법의 규정에 의해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 이상을 행사한 월권행위이며 스스로를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한민국의 최고권력기관의 지위에 올려놓은 쿠데타적 폭거다.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을 헌재가 ‘관습헌법’으로 판정하면 그것이 헌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게 된다는 헌재의 주장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만약 헌재가 주장한 ‘관습헌법’을 수용한다면 이는 주권자인 대한민국 국민만이 가지는 헌법 개정권을 헌재도 함께 가짐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전적으로 헌재의 판단으로 성립하는 ‘관습헌법’을 인정한다면 이는 주권재민의 원칙과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제2의 유신헌법이 될 것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30년 이상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주권재민의 원칙이 지켜지는 진정한 민주국가임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엉터리 관습헌법에 근거한 신행정수도 위헌결정은 하루빨리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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