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문풍지가 생각나는 계절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사이언스칼럼] 문풍지가 생각나는 계절

  • 승인 2005-11-15 00:00
  •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장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장
바람이 불고 낙엽이 뒹구는 초겨울에 접어들면 문풍지가 생각난다. 문틈사이로 몰아드는 바람이 문풍지를 떨게 하여 나는 소리의 여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여러 가지 음색을 떠올리며 문학적인 상상에 젖어들기도 한다.

겨울준비를 할때 여름을 지내면서 구멍 나고 누렇게 바래버린 문종이를 갈아붙인다. 쌀풀을 쑤어 문창살과 테두리에 바른뒤 문종이를 붙이고 입에 물을 한 모금 머금어 훅 뿌려 말리면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면서 희뿌옇고 소담스러운 문으로 되살아난다. 마지막에 문풍지를 붙인다. 그 곳에 꽃잎이나 나뭇잎을 넣고 붙이면 더욱 정취가 있다. 손으로 톡톡쳐 보면 마치 북소리가 난다.

이런 추억에 잠기면서 우리 고유 한지를 생각해 본다. 지금의 유리에 비하면 바람이 풀풀 들어올 것 같고 전혀 한기를 막아 줄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문종이(닥종이)가 오히려 이중유리(Pair Glass)보다도 보온·단열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년 내내 쓸 수 있도록 질기고 온·습도를 조절하고 햇빛을 조절하는 이렇게 쓰임새 많은 종이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이렇듯 한지는 책뿐만 아니라 장판지, 벽지, 종이꽃, 종이그릇, 종이옷, 종이함(Box) 등등 우리 겨레의 삶속에서 안 쓰인 곳이 없다. 이 종이에 콩기름을 먹이면 방수작용도 뛰어나다. 원래 우산도 지유산(紙油傘)이었다. 종이에 기름먹인 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온실도 만들어 겨울에 야채를 길러 먹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로켓의 원조인 신기전(神機箭) 약통도 한지로 만들었는데, 작은 소신기전은 복원이 되지만 영국의 근대 로켓보다 360년이나 앞서는 대신기전은 옛 질긴 한지가 없어 복원할 수가 없다. 요즈음의 한지로 만든 약통이 분출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우리 고유의 잿물한지가 산성지인 양지에 밀려 이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 우리한지는 왜 이렇게 질긴 것일까? 우선 그 소재와 만드는 방법자체가 다르다. 그 원재료는 닥나무이다. 그래서 한지를 닥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닥나무를 종이 만들기에 가장 좋은 성분을 갖는 11월에서 12월 초 사이에 벤다. 이 닥나무를 수증기로 쪄서 껍질을 벗기고 메밀대, 콩대, 고춧대를 태운재로 만든 잿물로 삶는다.

삶은 닥껍질을 냇가에서 깨끗이 씻어 햇볕에 바래면 희고 고운 약알칼리성 닥껍질이 된다. 이 닥껍질을 다시 가마솥에 삶아 방망이로 잘게 부순다. 그 뒤에 지통에 넣고 닥섬유가 엉키거나 가라앉지 않도록 황촉규(닥풀)라는 도라지 같이 생긴 식물의 뿌리 즙을 내어 섞는다.

이때 우리 닥종이는 중성을 띠게 되어 양잿물이나 팜 등 화학약품을 써서 만든 산성 종이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띠게 되어 천년이상 오래가는 종이가 된다. 그리고 종이를 뜨는 방법도 요즈음의 종이와는 전혀 다르다. 외발뜨기나 흘림뜨기라고 하는 방법을 쓰는데 물질한다고도 한다.

물질하는 방법은 천장의 외줄에 달린 외발틀에 대나무와 말총(말꼬리털)으로 만든 대나무 발을 얹고 앞물질과 옆물질을 하여 섬유가 십자로 얽히게 되어 질긴 종이가 된다. 옛책을 햇빛에 비추어 보면 세로줄이 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것이 한지뜨는 발을 엮은 말총자국이다. 이 한지를 다시 되살리고 그 특성을 현대 첨단과학기술에 응용하여 정밀 필터나 단열재, 흡음재 등 첨단소재로 거듭나도록 했으면 좋겠다.

올 겨울에는 거실문 하나쯤에 닥종이를 붙여 놓고 그 정취를 느껴보자. 그것이 바로 웰빙(Wellbeing)이요, 로하스(LOHAS) 일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4.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5.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헤드라인 뉴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교원들의 골머리를 썩이던 생존 수영 관련 업무가 내년부터 대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로 완전 이관된다. 추가로 교과서 배부, 교내 특별실 재배치 등의 업무도 이관돼 교원들이 학기초에 겪는 업무 부담은 일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2025년부터 동·서부교육청 학교지원센터(이하 센터)가 기존 지원항목 중 5개 항목의 지원범위를 확대하고 학교에서 맡던 업무 4개를 추가로 지원한다. 먼저 센터 지원항목 중 교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생존 수영 관련 업무는 내년부터 교사들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현재 센터에..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