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준비를 할때 여름을 지내면서 구멍 나고 누렇게 바래버린 문종이를 갈아붙인다. 쌀풀을 쑤어 문창살과 테두리에 바른뒤 문종이를 붙이고 입에 물을 한 모금 머금어 훅 뿌려 말리면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면서 희뿌옇고 소담스러운 문으로 되살아난다. 마지막에 문풍지를 붙인다. 그 곳에 꽃잎이나 나뭇잎을 넣고 붙이면 더욱 정취가 있다. 손으로 톡톡쳐 보면 마치 북소리가 난다.
이런 추억에 잠기면서 우리 고유 한지를 생각해 본다. 지금의 유리에 비하면 바람이 풀풀 들어올 것 같고 전혀 한기를 막아 줄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문종이(닥종이)가 오히려 이중유리(Pair Glass)보다도 보온·단열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년 내내 쓸 수 있도록 질기고 온·습도를 조절하고 햇빛을 조절하는 이렇게 쓰임새 많은 종이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이렇듯 한지는 책뿐만 아니라 장판지, 벽지, 종이꽃, 종이그릇, 종이옷, 종이함(Box) 등등 우리 겨레의 삶속에서 안 쓰인 곳이 없다. 이 종이에 콩기름을 먹이면 방수작용도 뛰어나다. 원래 우산도 지유산(紙油傘)이었다. 종이에 기름먹인 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온실도 만들어 겨울에 야채를 길러 먹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로켓의 원조인 신기전(神機箭) 약통도 한지로 만들었는데, 작은 소신기전은 복원이 되지만 영국의 근대 로켓보다 360년이나 앞서는 대신기전은 옛 질긴 한지가 없어 복원할 수가 없다. 요즈음의 한지로 만든 약통이 분출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우리 고유의 잿물한지가 산성지인 양지에 밀려 이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 우리한지는 왜 이렇게 질긴 것일까? 우선 그 소재와 만드는 방법자체가 다르다. 그 원재료는 닥나무이다. 그래서 한지를 닥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닥나무를 종이 만들기에 가장 좋은 성분을 갖는 11월에서 12월 초 사이에 벤다. 이 닥나무를 수증기로 쪄서 껍질을 벗기고 메밀대, 콩대, 고춧대를 태운재로 만든 잿물로 삶는다.
삶은 닥껍질을 냇가에서 깨끗이 씻어 햇볕에 바래면 희고 고운 약알칼리성 닥껍질이 된다. 이 닥껍질을 다시 가마솥에 삶아 방망이로 잘게 부순다. 그 뒤에 지통에 넣고 닥섬유가 엉키거나 가라앉지 않도록 황촉규(닥풀)라는 도라지 같이 생긴 식물의 뿌리 즙을 내어 섞는다.
이때 우리 닥종이는 중성을 띠게 되어 양잿물이나 팜 등 화학약품을 써서 만든 산성 종이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띠게 되어 천년이상 오래가는 종이가 된다. 그리고 종이를 뜨는 방법도 요즈음의 종이와는 전혀 다르다. 외발뜨기나 흘림뜨기라고 하는 방법을 쓰는데 물질한다고도 한다.
물질하는 방법은 천장의 외줄에 달린 외발틀에 대나무와 말총(말꼬리털)으로 만든 대나무 발을 얹고 앞물질과 옆물질을 하여 섬유가 십자로 얽히게 되어 질긴 종이가 된다. 옛책을 햇빛에 비추어 보면 세로줄이 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것이 한지뜨는 발을 엮은 말총자국이다. 이 한지를 다시 되살리고 그 특성을 현대 첨단과학기술에 응용하여 정밀 필터나 단열재, 흡음재 등 첨단소재로 거듭나도록 했으면 좋겠다.
올 겨울에는 거실문 하나쯤에 닥종이를 붙여 놓고 그 정취를 느껴보자. 그것이 바로 웰빙(Wellbeing)이요, 로하스(LOHAS)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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