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당만큼 종합적인 옛 건축 양식을 보유하고 있는 곳도 드물다. 고택의 안채, 사랑채, 목조 주련(柱聯), 가묘(家廟), 누각인 옥류각 등은 조선조의 가옥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동춘 선생의 어머님이 마련했었다는 비래암의 자취는 우암의 친필 현판으로 남아있다.
동춘당 동쪽 담 밖에 서 있는, 속칭 수소나무와 암소나무 2 그루와 팽나무는 조선 시대 건축물의 보호 기능과 함께 선비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가묘 옆 향측백나무는 제향(祭享)에 쓰는 분향용으로 심은 것으로,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가공품 향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동춘당은 이처럼 동춘 선생의 학덕(學德) 못지 않게 유적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그 중에서도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춘당 망와(望瓦)다. 망와는 용마루나 추녀 마루 끝을 마무리하는 기와로, 막새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글씨나 무늬가 새겨져 있고 제조 연대까지 들어가 있는 게 다르다. 망와는 쓰이는 건축물마다 문양과 내용이 다를 뿐 아니라 제작 연대가 기록되기도 한다. 따라서 망와는 그 유적이나 유물의 연대를 알 수 있는 ‘역사의 시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춘 고택 지붕의 망와는 둥그런 바탕 위에 사람의 얼굴 모습을 한 도깨비가 그려져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새색시를 연상할 수도 있는 모습이다. 얼굴의 양 볼에 ‘卍’자 무늬를 넣은 것이 특이한데 비래암 내불당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한다.
동춘당 망와의 문화적 가치는 중국이나 일본의 전문가들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확인된 적이 있다. 충남도-구마모토 간 교류의 한 핵심 멤버였던 이인구 계룡건설회장의 소개로 동춘당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일본 와세다대학의 한 교수(고고학)가 2000년 초봄 동춘당을 답사한 적이 있다. 그때 필자는 그 교수에게 동춘당을 안내하면서 망와의 사진들을 건네주기도 했었다.
동춘 고택의 망와는 450년은 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전라도 장흥 가마에서 구운 것으로 보여진다. 가묘의 망와 역시 같은 시대 것으로 추측된다. 동춘 고택은 가묘(家廟)와 함께 별묘(別廟)를 두고 있는데, 별묘는 가묘와는 달리 임금 허락이 있어야 지을 수 있고, 또 별묘를 지을 때 필요한 기와는 조정에서 하사하였다. 동춘고택 별묘의 망와도 조정에서 하사한 것이라는 전문가의 감정이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보물로 동춘당의 개·보수 과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망와가 유출되거나 분실되고 있는 점이다. 개·보수용으로 사용되는 기와는 문양 등 모든 것이 본래의 것과 다르다. 한밭도서관에 들어 있는 향토사료관에 동춘당 망와 유물 2점을 보관해두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동춘당은 조선조 가옥의 조경 풍수 자연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보기드문 건축 문화재로 이런 소중한 문화재를 가진 우리가 자랑스럽다. 내년은 이런 문화유산을 대전시민들에게 남긴 동춘 선생 탄신 400주년인 만큼 대전시와 대덕구 등 관계 기관에서는 동춘 선생을 기리고 문화유적을 잘 보전·관리할 수 있는 특별한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물론 여기에 필요한 예산을 배정하는 데도 과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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