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의 발산을 절제하는 중화(中和)의 노래인 시조가 그 어느 애절한 사랑의 노래보다 더욱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것은 가을이라서 그럴까요?
달이 너무도 밝아 배 타고 강에 나갑니다. 물속의 달 건지러. 그 달 쳐다본 임의 눈길 찾으러. “월정명(月正明) 월정명커늘 배를 저어 추강(秋江)에 나니/ 물아래 하늘이요 하늘 가운데 명월이라/ 선동(仙童)아 잠긴 달 건져라 완월(玩月)하게 하여라.” 찬물 속에 담긴 가을달의 스산함이 가슴 속에 파고드는 이 우조시조의 독특한 전성(轉聲)과 묘한 선율은 삐걱대는 노 젓는 소리와 달빛에 일렁이는 물결을 마치 눈앞에서 듣고 보고 있는 것처럼 만듭니다.
적적한 밤나들이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올 리가 만무합니다. 객지를 떠도는 내 님은 어디쯤 계실까? “임 그린 상사몽(相思夢)이 실솔의 넋이 되어/ 추야장(秋夜長) 깊은 밤에 임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하노라.”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다 지쳐서 잠이 들고, 꿈속에서 귀뚜라미의 넋이 되어 임을 찾아갑니다.
이 시조는 조선 선조 때 여류시인 옥봉(玉峰) 이원(李媛)의 한시 ‘몽(夢)’과 일맥상통합니다. “근래안부문여하(近來安否問如何)/ 월도사창첩한다(月到紗窓妾恨多)/ 약사몽혼행유적(若使夢魂行有跡)/ 문전석로반성사(門前石路半成沙)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창문에 달 비치니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임 계신 곳 다니는 꿈길이 자취를 남긴다면/ 그곳으로 난 돌길은 거지반 모래가 되었을 것을). 여인의 내밀한 정이 느껴지는 절창입니다.
시조가 아닌 가볍고 촉박한 가락은 이렇게 깊고 애틋한 여인의 정을 결코 표현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움은 여인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달 밝고 서리 친 밤 울고 가는 저 기러기야/ 소상동정(瀟湘洞庭) 어데 두고 여관한등(旅館寒燈) 잠든 나를 깨우느니/ 밤중만 네 울음 한 소리에 잠 못 이뤄 하노라.” 비록 여창지름시조로 불리지만, 객사에 머물며 또 한 해가 막바지로 치닫는 늦가을에 고향의 아내와 식솔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남정네의 노래입니다.
소상(瀟湘)의 평사낙안(平沙落雁)에나 어울릴 기러기가 왜 여기까지 날아와 이렇게 나그네를 울적하게 만드는가?
당나라 시인 고병(高騈)의 마음이 바로 그랬을까요?
“여관한등독불면(旅館寒燈獨不眠)/ 객심하사전처연(客心何事轉悽然)”(객사의 쓸쓸한 등불아래 홀로 잠 못 이루고/ 나그네 고단한 마음 어찌 이리 뒤척이는가…)
늦가을 정인(情人)을 그리는 시조창은 애절하지만 곱기도 참 곱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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