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행운의 편지’를 쓰는 14살 소년이 있다. “오빠, 사랑해”를 되뇌이는 5살 여동생을 밀어둔 채 누군가를 위해 대신 ‘답장’을 써주고 있는 중학 1학년의 소년. 영화 ‘사랑해, 말순씨’는 바로 그 소년과 소년의 특별한 연인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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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하는 은숙은 성에 대한 호기심의 대상이다. 소년의 머릿속을 꽉 채운 건 하숙방 은숙 누나의 봉곳이 솟은 가슴뿐이다. 나의 천사, 내가 지켜주고 싶은 첫 여자.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인생의 태클’을 거는 강적이 있어 파란만장 그의 삶은 골치가 아프다. 김말순 여사, 지긋지긋한 그녀는 소년의 엄마다. 지글지글 볶은 파마머리에 맨손으로 쥐를 때려잡는, 눈썹 없는 화장술의 대가.
청순한 은숙은 눈썹을 몽땅 밀고 쥐 잡으러 뛰어다니는 엄마 말순을 자꾸만 더 미워보이게 한다. 재명은 특별한 우정으로 광호의 성장에 감초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학교에서 유난히 억압당하는 철호는 1979년에서 1980년이라는 극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시대의 피해자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광호와 관계를 맺는 이들은 광호가 보낸 행운의 편지를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결국 이들은 행운의 편지에 대한 불신을 토로한 후 광호 곁을 떠나는 운명을 맞는다.
영화의 또 다른 미덕은 ‘시대에 대한 강박’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뀐 1979년에서 1980년의 정치적 상황을 보여 주면서도 이에 대한 분노나 정치 의식을 관객들에게 주입하지 않는다.
대신 폭압적 상황이 광호의 학교생활을 통해 소년의 일상과 거리가 먼 일이 아니었음을 은근히 비치면서도 성장하는 소년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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