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사는 ‘고도의 정치행위’ 불가?
‘지방정치’ 한계 그을 필요 없어
한비자는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이유의 하나로 신하들이 파당(派黨)을 만드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신하들이 서로 한 패거리가 되어 손을 잡을 때 여기에 참여하는 자들은 벌을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 점에서 심대평 충남지사는 요즘 큰 벌 받을 일을 하고 있다. 도백(道伯·도지사)도 임금의 신하일 뿐인데, 감히 ‘작당(作黨)’을 하고 있으니-더구나 왕궁에서 떨어진 변방에서- 옛날 같으면 역모죄를 면키 어렵다.
다행히 오늘날 지방자치단체장에겐 ‘정당(정치) 활동’이 허용돼 있어 도지사의 정치가 죄가 되지는 않는다. 또 거개는 정당 추천을 받아 당선되고, 종종 당직을 맡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자치단체장이 정당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시민단체가 신당 창당 작업에 본격 나선 심지사에게 지사직 사퇴를 주문한 것에도 그런 시각이 깔려 있다. 심지사는 “도지사가 정치하니까 나가라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라며 일축했다. 양측 공방은 “시·도지사의 정치 활동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관선(官選) 시절 도백은 정치엔 얼씬도 안 하는 행정관료일 뿐이었으나, 민선(民選) 이후 행정가이면서 동시에 정치인이 되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행정가로서의 자세와 역할을 더 요구받는 경향이 있다. 자치단체장 선거가 정당 공천제로 치러지기 때문에 시장 군수조차 선거 때면 정치판에 얼씬거려야 하는 점-가령 요즘 가기산 서구청장과 김성기 중구청장의 정당 선택의 고민 같은-은 인정하지만 그들이 그 이상 정치활동에 개입하거나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게 일반적 정서다.
이유는 분명 있다. 행정, 특히 조직이 당파적 이해에 이용되고 휘둘릴 우려가 있다. 시민단체도 ‘도지사의 행정력이 선거 등에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사퇴할 이유로 들었다. 그렇지만 이는 정당공천으로 당선된 모든 자치단체장에게 해당되는 사안으로, 심지사한테만 적용될 기준은 아니다. 이번 심지사의 경우에 따져봐야 하는 것은, 시·도지사들의 경우 통상적인 정당활동은 허용되지만 ‘창당(創黨)과 같은 고도(高度)의 정치행위’는 금지돼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나는 도지사가 ‘행정력을 선거 등 정치에 이용하거나, 또 정치에 매달리느라 행정을 너무 소홀히 하는 문제, 때문이라면 몰라도, ‘고도의 정치 행위’를 한다는 이유로 사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방의 시·도지사라 하여 남들이 만든 정당에 들락거리는 정도의 소극적이고 통상적인 정당 활동은 괜찮고 신당 창당 같은 적극적인 정치 활동은 금지한다면, 이것은 권력은 국회의원 같은 중앙 무대 정치인들만의 몫일 뿐 변방(지방) 정치인들은 결코 넘보아선 안 된다는 의미다. 중앙의 논리고 반(反)지방적 사고 아닌가?
지방분권을 위해선 지방에서의 적극적 정치활동도 보장돼야 하며, 전국의 시·도지사들이 그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방분권이 확립된 미국이나 독일 같은 경우가 이를 방증한다. “독일에서는 주지사(州知事·우리나라의 시도지사에 해당)가 정당업무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활발한 정치활동을 펼친다. 그래서 주지사를 거쳐 총리에 오르는 경우도 많다.”(원준호 한경대교수·행정학)
이젠 중앙에서 내려준 권한만 행사하는 ‘행정가형’ 도지사뿐 아니라, 중앙에 더 많은 권한을 요구할 수 있는 ‘정치가형’ 도지사도 필요한 시대다. 지방분권이 시대적 과제가 되면서 정치가형의 필요성은 더 커졌다. 심지사는 정치가형으로 변신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변신이 임기 후반에야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여 지적할 수는 있어도 도지사라는 지위 때문에 고도의 정치행위를 금지당할 이유는 없다. 도지사의 정치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곧 ‘지방 정치’의 한계를 스스로 긋는 일이다. 도지사는 ‘고도의 정치 행위’가 아니라 ‘너무나 정치적인 행동’ 때문에 비난받을 수는 있다. 우린 심지사가 ‘너무나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지 감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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