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면 역시 단풍이다. 단풍은 빨강이 아름답지만 진 노랗게 물든 단풍 역시 그에 못지않다. 교회마당가에 은행나무가 있는데 그중 유난히 한 녀석만 앞서 물들어 나의 시선을 끈다.
“왜 하필 이 녀석만 급히 물들어 있지?”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마디 했더니 지나가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들으시고 “그야 사람도 빨리 늙는 사람이 있고 더디 늙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놈이 빨리 늙었나 봅니다.”
진노랑 은행잎을 보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래 맞다. 단풍은 병든 잎이다. 추위 앞에서 자신의 본색인 초록색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서 붉게 혹은 노랗게 탈바꿈을 하는 것이 단풍이다. 사람도 더 이상 자신을 조절할 수 없을 때 병들고 무너지게 된다.
또한 단풍은 늦가을 찬바람에 떨어져 뒹굴다 썩게 될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면서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떨어져 쌓이게 될 낙엽의 전주곡이며, 푸른 계절의 퇴장과 함께 북녘에서 불어올 찬바람, 눈보라를 예고하는 겨울의 전령사이기도 하다.
물론 낙엽 깔린 보도 위나 오솔길을 연인과 함께 걸어가며 바삭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은 시적이며 낭만적이다. 그러나 찬바람 맞으며 뒹구는 낙엽을 밟거나 나무에 매달린 채 삭풍에 흔들리는 단풍잎을 보면서 또한 서글픔이 느껴진다. 아마 그 낙엽에서 인생의 그림자를 보기 때문이다. 그가 ‘나’이고 내가 ‘그’이고 우린 다 같은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결국 언젠가는 낙엽처럼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떨어져 버릴 존재이다. 건강으로부터, 아버지 어머니 자리에서 떨어지고, 행복으로부터 떨어지고, 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질 존재, 바로 이것이 인생이다. 다 알면서도 떨어지지 않겠다고 가지에 매달려 바둥거리고 안간힘을 다 하다 결국은 떨어지는 어리석고 미련한 존재, 그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오래 전 원인모를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소년의 장례식을 집례한 일이 있었다. 말없이 누워있는 나이어린 소년을 보면서 인생이 반드시 낙엽처럼 단풍이 진 후에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꽃다운 나이에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떠나버린 소년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고 경종이었다.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1)
이 성경 말씀은 낙엽처럼 떨어질 우리 인생들에게 주는 경고이며 경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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