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조류독감과 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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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조류독감과 기러기

  • 승인 2005-10-27 00:00
  • 박찬인 충남대 교수박찬인 충남대 교수
이번 가을에 접어들면서 세계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멕시코 만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는 허리케인과 그 후속 피해상황 속보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라크의 테러 소식이나 파키스탄의 지진피해 보도도 아니다.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그것은 바로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조류독감이다. H5N1형 인플루엔자의 사람 감염과 그 변종의 전염확산 예상은 모든 나라를 긴장시키며 각국의 관계 보건당국을 부산하게 만들고 있다.

조류독감이 무서운 까닭은 그 바이러스가 1918년 창궐했던 스페인 독감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당시 스페인 독감은 세계에서 50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엄청난 재앙이었다. 항-바이러스제나 항생제가 없던 당시와 현대의학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요즘 조류독감이 사람으로 건너뛰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진해일보다 더 큰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하였다.

이미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터키와 루마니아에서도 조류독감이 나타났다. 영국에서도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었고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는 조류독감 감염을 막고자 모든 가금류의 방목을 금지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유럽연합과 미국을 포함하여 말 그대로 전 세계가 긴장하며 예방백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한편 조류독감의 매개자로 알려진 철새가 난데없이 홀대를 받게 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철새의 대표주자격인 ‘기러기’가 양산되면서 ‘기러기 증후군’이 전염에 전염을 거쳐 확산을 거듭하고 있다. 이 병은 조류독감보다 더 무섭고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첫 사망자가 나왔다.

부인과 자녀를 미국에 보내고 6년이나 홀로 살던 50대 건축사 ‘기러기 아빠’가 죽었다.
사망 당시 그 기러기는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40만 원짜리 10평 원룸에 혼자 살고 있었다. 닷새 만에 알려진 그의 죽음은 기러기 신드롬이 얼마나 못된 질병인지 드러나는 기회가 되었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평소 고혈압으로 시달리면서도 술·담배를 끊지 못했다. 거기에는 외로움과 학비 걱정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가정도 없는 그가 한 일은 이른바 ‘돈 버는 기계’ 역할뿐이었을 지 모른다. 두려운 건 이 죽음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조기유학으로 대한민국을 탈출한 초·중·고 학생들이 서울에서만 1만2000여 명이고 전국적으로는 2만명이 넘었다. 이에 따라 외국으로 유출된 교육비는 모두 7조 원 정도였고 올해는 1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재경부는 추정한다. 기러기의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하지만 엄마의 보살핌이 불가피한 초·중등학생이 70% 이상이고 보면 줄잡아 약1만5000명에 가까운 기러기 아빠의 규모가 헤아려진다.

기러기의 위험성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가정이란 과연 무엇이고 교육이란 과연 무엇인가. 기러기 아빠 현상은 어떻게든 자식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근시안적인 생각, 아버지는 돈 버는 기계 혹은 가계를 책임지는 마당쇠라는 위상 전락, ‘나라고 빠질소냐’하는 어머니의 경쟁심리 등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부부와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는 떨어지는 순간 성격이 변할 개연성이 있다. 이미 국내에서의 기러기 아빠들의 일탈과 국외에서의 기러기 엄마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도를 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되었다. 오죽하면 뉴질랜드 오클랜드에는 ‘오과부’라는 말이 나돌까.

봄이 바라보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돌아보는 계절이다. 그래서 다 같이 묻는다. 가정이란 무엇인가? 기러기는 앞서가는 당연함인가? 정치란 무얼 살피고 고민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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