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규 편집부국장 |
하지만 대중 언어는 시대적 요청으로 인해 일순간 탄생도 하지만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한다. ‘행정수도’라는 단어도 예외는 아니다. 행정수도라는 언어는 어찌 보면 70년대인 3공화국시절에 탄생됐다. 그 후 역대 정권마다 정치적 공약이나 정책으로 회자되다 현 정권인 참여정부에서 그 빛을 더욱 발했다. 참여 정부가 대통령선거공약으로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식화했고 정권의 핵심정책 과제로 채택, 시대적 화두가 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용어는 시대적 논란이나 화두를 감안할 때 생명력이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주지하다시피 2004년 10월 21일 공식적인 탄생의 태반이었던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이다’라는 관습헌법을 이유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한 위헌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의미가 어디에 있든 ‘행정수도’라는 단어도 관습이라는 주문하나로 하루아침에 장렬하게 전사한 셈이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역대정권의 숙명을 지고 탄생된 이 생명체는 역사의 한 페이지만 장식한 채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시대적 조류이자 역사적 사명이라는 대 전제 앞에 ‘행정도시’라는 이름으로 환생됐음은 불문가지다. 충남의 연기·공주에 들어설 ‘행정중심복합도시’, 약칭 ‘행정도시’로 등극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환생의 과정은 그야말로 산고의 진통이라 할 만큼 난산이었다. 위헌 판결이 있은 그날 이후 충청권은 일순간 ‘절망’이라는 조류독감에 감염되어 버렸고 ‘허탈’이라는 수렁에 빠져 들었다.
오래된 먼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작년 이맘때 벌어졌던 시대상황이다. 당시 절망은 분노로 바뀌었고 그 분노는 충청권을 뛰어넘어 전국으로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하루가 멀다하고 규탄대회와 궐기대회가 이어졌고 그때마다 정부와 정치권, 헌법재판소 그리고 일부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중앙언론에 대한 피토하는 성토가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주된 목소리는 위헌판결로 거품이 된 신행정수도 건설은 국가 천년대계로 중단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 주된 목소리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행정수도는 또 다른 행정중심복합도시, 일명 행정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위헌판결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야 합의를 거쳐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관한 특별법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행정도시는 빛을 본지 채 1년이 안됐음에도 이미 보통명사가 돼 버렸다. 행정도시 건설은 천년대계라는 국가장래를 담보하고 거보를 내디뎠다.
하지만 역풍도 만만치 않다. 호사다마일까 아니면 아픈 역사의 반복인가. 신행정수도 특별법이 위헌판결을 받은 지 한 돌 만인 27일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에 대한 위헌여부가 예고되고 있다.
물론 여기서 국가 최고의 권능을 지닌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예단하고 싶지는 않다. 더구나 행정도시라는 언어의 흥망성쇠를 논하려는 유희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행정도시 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 판결여부에 관심이 머무름은 괜한 귀소본능의 탓만은 아니다. 만에 하나 위헌판결이 되풀이 될 경우 정부의 기능마비와 국회의 존재가치 상실, 지역갈등 심화 등의 부작용을 낳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시대적 화두로 탄생된 단어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려면 그만큼의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충청인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걱정처럼 행정도시를 둘러싼 더 이상의 부관참시는 시대조류 상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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