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기기 앞 고객들의 행렬 변화를 보며 저축과 소비의 관계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최근 관계기관에 따르면 올해 저축의 날 행사에서 저축유공자 표창을 받는 사람은 120명 정도로 예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더군다나 2003년에는 ‘저축의 날’을 폐지하는 방안이 검토된 적도 있으며 그 이후에도 저축의 날 행사로 떠들썩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엔 저축은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소비를 진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0%대 중반이던 총저축률이 지난해 27%까지 떨어져도 걱정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들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일수록 국가경제에 마이너스가 되는 소위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절약은 개인의 관점에서는 언제나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같은 선택을 한 경우에는 소비를 위축시켜 사회 경제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처럼 소비가 미덕이란 주장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아끼고 절약하는 만큼 ‘투자’가 일어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지게 된다. 저축 또한 호경기인가 혹은 불경기인가에 따라 미덕이 될 수도 있고 ‘역설’을 만들 수도 있게 된다.
경제가 성장해 나가려면 우선 자본이 축적되어야만 하는데 저축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본이 순조롭게 형성될 수 없다. 해외에서 돈을 빌려와 투자할 수도 있지만 끝없이 빌려오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저축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다. 악덕이 아니라 여전히 미덕인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렇게 된 주요 원인은 미국 사람들이 저축을 게을리 한 데 있다. 기업들이 광고 공세를 통해 소비욕구를 자극한 데다가 신용카드가 보편화되는 추세까지 겹쳐 미국 국민사이에는 빚을 내서라도 쓰고 보자는 풍조가 만연해졌다. 그 결과 국민 저축률은 유례없이 낮은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게 되었고, 투자도 자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투자가 부진해지면서 미국 기업들은 국제경쟁력을 서서히 잃어가게 되었다.
최근에는 소비와 저축의 불균형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과소비로 경제적 곤궁에 처한 미국과 저소비로 국내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일본, 유럽경제가 대비되고 있다. 과소비의 영향이 결국 저축 부족과 투자 부진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아직도 안고 있는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의 문제도 저축 부진이 원인이다. 국내의 저축이 너무나도 적었기 때문에 빌려 쓸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결국 국제 수지에 적자를 가중시키게 되었다.
경제생활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것이 과소비다. 능력은 안 되는데 신용카드나 타인의 돈을 빌려 그 이상을 쓰거나 남의 눈을 의식해 분수에 안맞게 고가의 외국제품을 구입하는 것도 과소비의 일종이다. 무조건 안 쓰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무조건 안 쓰는 구두쇠가 된다면 나라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저축과 소비가 경제를 움직이는 쌍두마차로서 균형을 이루고, 우리 모두 ‘건전한 구두쇠’가 되는 게 우리 경제를 위한 미덕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중·고소득층의 건전한 소비 기풍을 진작 시키는 한편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긴요하다. 설비투자의 효율성을 높여 수익향상 →저축증가 → 투자증가의 선순환 구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