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감 넘치는 생명력 넘실.
가을 정취 가득 마음에 평온 절로 스며든다.
영화 JSA 대사 한마디 읊어보면 나도 주인공이 될 지도….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갈대밭. 가을의 낭만이라는 억새풀에 이어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들녘에 광활하게 펼쳐
서천 한산에서 작은 시골길, 차창밖으로 펼쳐진 산풍경에 흠뻑 빠지다 보면 당돌한 방파제가 나타난다. 수천년동안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금강의 물줄기를 감히 막아나선 '금강하구둑, 그 중간쯤 작은 집 한 채가 서 있다.
그곳이 바로 갈대밭이다. 엄청나게 넓다. 폭이 200m 되는 1km정도가 모두 갈대로 채워져 있다. 바람이 원하는대로 바람과 함께 생을 살아가는 갈대밭, 무려 7만여평이나 된다. 2m에 달하는 갈대, 강둑에 올라서면 강쪽의 하얀 갈대와 억새가 가을 수확을 앞둔 황금빛 벼들과 이상하게 조화를 이룬다.
우리나라 4대 갈대밭 중의 하나로 여름에도 바람에 스치는 갈대 소리는 더위를 싹 날려버릴만큼 오싹하다. 잎과 줄기가 말라 스산함을 더하는 겨울이 오면 온갖 철새들이 찾아와 가을과는 또 다른 겨울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신경림 시인의 ‘갈대’라는 시가 새겨진 나무 현판이 나타나는 곳부터 갈대밭 속에서의 산책이 시작된다. 여기저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갈대밭 사이로 보인다. 삼삼오오도 있지만 대부분 가을낭만과 함께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로 가득하다.
사람 키를 완전히 덮어버려 밭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숲’이라 해야 할 정도다. 까치발을 하고 손을 높이 들어도 닿지 않는 갈대. 2m에 달하는 갈대밭 속, 조용하다. 인위적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갈대를 스쳐가는 바람의 흔적과 갈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온갖 생명체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겨울, 세찬 바람이 세상을 매섭게 내리쳐도 하얗게 뒤덮인 눈 속에는 눈들이 나누는 따뜻한 소리만 들린다. 갈대밭 역시 마찬가지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곧 다가올 겨울, 서로 부대끼며 이겨내자라는 그들만의 ‘몸 비비는 소리’뿐이다. 인기척에도 의식하지 않은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처럼 그들의 소리도 은은하게 들리기까지 하다.
넓은 공터를 중심으로 오른쪽의 나무다리를 건너 강속으로 그림자를 드리운 갈대들의 모습을 보고나서 갈대밭 속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소롯길로 들어간다. 한바퀴 하늘과 갈대만을 벗삼아 돌아나오면 큰 키를 자랑하는 늘어선 억새가 반긴다.
가을만의 매력이 최고 절정을 이루고 있는 이 때, 갈대밭은 그대에게 지나온 삶을 돌아볼 여유를 선사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신경림>
가볼만한 갈대밭
●순천 다대포구- 금빛 일몰이 장~관
순천만 갈대밭의 총면적은 약 15만 평. 순천 시내를 관통하는 동천과 순천시 상사면에서 흘러온 이사천의 합수 지점부터 하구에 이르는 3㎞쯤의 물길 양쪽이 죄다 갈대밭으로 뒤덮여 있다.
그것도 드문드문 떨어져 있거나 성기게 군락을 이룬 여느 갈대밭과는 달리, 사람의 키보다 훨씬 더 웃자란 갈대들이 빈틈없이 밀생한 갈대밭이다.
순천만의 갈대밭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일몰과 다대포의 환상적인 새벽 안개를 모두 감상하려면 천상 그 근처에서 하룻밤 묵어야 한다. 특히 해질녘 순천시 해룡면 용산에 오르면 황금빛 물결을 싣고 S자로 휘감아 돌아 흐르는 갈대밭 물길이 장관을 이룬다.
●해남 고천만 - 국내 최대의 영화촬영지
고천만의 갈대숲은 해남 바닷가의 너른 간척지에 드넓게 펼쳐져 있다. 모두 50여만평 규모의 갈대숲으로 국내 최대다. ‘서편제’, ‘살인의 추억’, ‘청풍명월’ 등의 영화촬영 장소로 알려져 있다.
고천만 갈대숲에는 갈대만 있다. 주변에는 민가도 없고 화장실같은 편의시설도 없다. 오직 수확 끝난 텅 빈 논과 드넓은 갈대숲 뿐이다. 사람의 손을 덜 탄 자연스러움 때문에 한결 정감이 넘친다. 오직 자신만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준 길손에게 감사하듯 가을바람에 맞춰 춤을 추며 반가이 맞아준다. 하지만 너무 촘촘해 갈대숲 안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창녕군 화왕산 - 하얀 솜이불 두른 대초원
6만여평의 대평원에 십리 억새밭. 화왕산 억새밭은 산 위에 펼쳐지는 광활한 대초원이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옴팍한 대규모의 분지가 온통 억새꽃 하얀 솜이불을 두르고 있다.
억새의 크기도 사람의 키를 훨씬 넘는다. 새벽녘에는 또다른 진풍경이 펼쳐진다. 밀려온 안개가 푹 팬 초원을 가득 채우면서 초원은 하얀 호수가 된다. 안개가 억새꽃 사이사이를 지날 때면 억새밭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하얀 목을 내밀고 우유빛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듯한 선경을 이룬다. 가을에는 5만평 억새숲에서 국내최대의 산악인 야간축제가 벌어져 일대 장관이 펼쳐진다.
찾아가는 길
▶대전(회덕나들목)→호남고속도로→논산(연무나들목)→강경→한산(신성리 갈대밭)
▶서해안고속도로 이용시 서울→평택→당진→서산→대천→서천IC→한산(신성리 갈대밭)
※서천읍 외곽에서 한산 방향 612번 지방도로 좌회전, 13km 달려 왼쪽으로 한산모시관이 나오고 300m 더 직진해 신성 방향(613번)로 우회전. 갈대밭은 여기서 5km 거리에 있는데 ‘JSA 촬영지’표지판이 줄곧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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