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꾀꼬리를 만났던 숲 부근에서 다람쥐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아직 몸짓이 작은 것을 보니 지난해 이곳에서 만났던 다람쥐 한 쌍의 새끼인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남선공원을 유심히 살펴보다보니 공원안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다람쥐 부부의 세력권이다. 남선공원은 4만5000평 규모를 갖는 자연적인 지형을 유지하고 있는 공원이다. 주요 먹이감이 풍부한 참나무와 밤나무가 많은 숲은 당연히 힘이 센 청설모에게 내주고, 아까시나무가 많은 벼랑지역에서 살고있는 다람쥐 한 쌍을 만날 수 있었다. 다람쥐가 살고 있는 지역을 지날 때마다 더욱 유심히 살펴 이들이 무사한지 지켜보게 되었고,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 만나게 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새로운 희망이 생겨났다. 숲의 대부분 지역을 내주고 숲 한 자락에서 나마 만날 수 있는 작은 다람쥐 한마리에서 도시공원의 희망을 느낄 수 있어 항상 좋다.
남선공원에서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려는데 다른 편 숲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숲에서 날수 있는 일상적인 소리가 아닌 것이 왠지 불안하였다. 다가가보니 누군가가 공사장에서나 쓰이는 해머로 참나무를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는 현장을 보니 해머가 내 머리를 치는 기분이었다. 떨어진 것만 줍지 왜 나무를 괴롭히냐고 도토리를 따던 한 무리에게 신경질적으로 말을 했을 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침 함께 있었던 공무원이 해머를 빼앗고, 주변에 있던 다른 분들에게도 경고를 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이 왠지 찜찜하고 개운하지 않았다. 도토리와 사람, 다람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도토리는 원래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인 참나무의 모든 열매를 말한다. 예전부터 도토리는 흉년이 들었을 때 먹을 것을 대용할 수 있는 식물로서 대표적으로 활용되었다. 먹을 것이 흔해지면서 도토리를 잘 줍지 않다가 다시 웰빙이다 자연식이다 하여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식물학사에 참나무에 대한 아주 유명한 뒷이야기가 있다. 외국 식물학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나무를 연구하는데, 자신이 만난 모든 종류의 참나무가 가슴높이에 불뚝불뚝 튀어나온 모습을 보고, 한국산 변종인 것으로 판단하고 학계에 보고 하려고 조사를 했다고 한다. 이후 알고 보니 도토리를 조금이라도 일찍 따려고 주변에 있는 돌로 찍어서 생긴 상처가 아물고, 다음해 또 돌로 찍고 아물어서 생긴 상처 자국이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숲에서 배불뚝이 참나무를 보면 미안하기도하고 고맙다는 마음을 갖기도 한다. 예전에는 정말 못 먹고 못 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겼던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1세기 대전시 도시공원 한복판에서 또 다시 벌어지는 일. 도심 속 그 작은 공원에서 도토리묵을 쑤어 먹으면 얼마나 먹겠다고 참나무를 그리도 괴롭히고, 숲 속 샅샅이 뒤지면서 짓밟아 버려야 하는지 아쉽다. 그 숲 속에서 만난 새끼 다람쥐들 모두가 겨울을 나고 내년 봄에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내년 봄에도 아이들과 함께 남선공원에서 다람쥐를 만나고 싶은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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