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거닐다보니 한 그루의 단풍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여학생이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을 읽을까 궁금해서 가보니 시집이었다. 참으로 부러웠다. 나도 한 번쯤은 총장이라는 직분을 잊고 저 학생처럼 한가롭게 단풍나무 밑에서 책을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때 캠퍼스를 거닐 던 생각과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들이키던 기억도 머리를 스쳐간다.
갑자기 바쁜 와중에도 한가한 시간을 즐긴다는 망중한(忙中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망중한의 참맛이 이러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편 잔디밭에서 서너 명의 학생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잘 거리는 그 소리도 참으로 신선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 학생들이 하는 말은 분명히 한국말인데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학에 있다 보니 학생들이 반갑다는 뜻으로 이야기 하는 ‘방가방가’ 쯤은 알아듣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신세대들 사이에서 신조어나 축약어, 국적 불명의 외래어 등이 혼용되어 사용 되니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난 그들이 하는 몇 가지 말 들을 적어 집무실로 돌아와 교직원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 또한 자세하게 알지를 못했다.
한참 후 비서실에서 그 뜻을 알려 주었다.
알겠삼(알겠습니다), 귀차니즘(사람들이 귀찮게 한다), 싸이질(싸이를 많이 한다), 즐팅(즐겁게 채팅을 한다), 하이루(반갑다), 열공(열심히 공부해라), 달려(계속 술을 마시자), 도촬(핸드폰으로 몰래 촬영한다), 지름신(소비신이 나한테 붙어 내가 물건을 많이 사는 일을 저질렀다)…. 세대 차이를 느끼게 하는 말들이다. 그리고 한글 맞춤법과는 완전히 다른 신조어와 축약어 들이다. 이제는 그러한 말들이 유행어처럼 널리 쓰이고 있다. 문제는 신세대들이 그 말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쓴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유행어들이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퍼져 갔고 그 유행어의 폭 또한 매우 좁았다. 그리고 신세대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만들어진다 할지라도 퍼져가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때문에 그 유행어가 소멸될 때까지 듣지 못하는 신세대들도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각종 유행어가 인터넷을 타고 시시각각 전해진다. 인터넷의 속성은 정보를 빠르게 전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다보니 문장을 다 갖추어 자신의 의도를 전할 여유가 없어졌다. 이에 ‘열공’ ‘지름신’ 처럼 축약을 하여 유행어가 생성되는 것이다.
참으로 우려되는 바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말들은 더욱 많이 생성될 것이다.
어떤 취업 준비생은 자기 소개서에 유행어를 사용했다가 탈락됐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시험 답안지에도 뜻 모를 단어들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급속하게 정체불명의 말들이 생성된다면 한글 체계의 근본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재미있게 듣고 흘려버릴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그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신세대들의 교육에 좀 더 신경을 쓸 일이다. 이제 가끔씩 학교 캠퍼스를 거닐며 학생들과 호흡하며 즐겁게 학교 경영을 해보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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