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재환 사무국장 |
요즈음 이혼율이 점점 늘어 보호소에 맡겨지는 고아 아닌 고아의 숫자가 날로 늘어나고 입양으로 떠나는 아이들이 많은 것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요, 기성세대들이 함께 고민하며 고통을 분담해서라도 함께 치유해야할 커다란 사회문제이며 국가 사회 나아가 우리전체가 책임을 통감하고 치유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장래를 위하고 한민족 한겨레로 함께 나아가는 길이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 이유요, 지상 명제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이런 명제는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봉사는 크고 힘든 것이 아니며 내 주위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과 정을 나누며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한 달에 한번만이라도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봉사하거나 말벗이라도 돼주면 얼마나 좋을까?
또한 시간이 없다면 작은 액수의 금품이나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쪼개어 그들과 함께 나누며 고민하는 것도 좋은 예라고 하겠다.
성경의 ‘한사람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열 사람에게 속더라도 계속해서 도와줘야 한다’는 말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
학교에서 초???고생들에게 수시로 봉사활동을 하도록 하고 그것을 내신성적이나 학교 생활에 반영하는 것을 형식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형식적인 봉사라도 자주 하도록 지도하며 칭찬하고 참된 봉사를 실천하도록 우리 기성세대가 잘 유도해서 좋은 제도로 만들고 그것이 쌓여 진정한 참봉사가 되도록 해야한다. 인간은 본시 본성이 착하지만 후천적으로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좋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실천하도록 하면 더 좋은 품성으로 바뀌지을까? 그래서 나는 형식이든 정성이든 사랑과 봉사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어찌됐든 그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사회는 아직도 살맛나는 세상이며 그들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하기에 작지만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는 그들에게 한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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