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안내견 분양으로 ‘새 빛’
‘주인님’ 행차때면 최고의 ‘의전비서’
아직은 곱지않은 주변 시선 안타까워
충남 보령에 사는 최씨,
그를 아끼고 사랑해준 남편과 자녀들 때문만은 아니다. 10살,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도 앞을 볼 수 없었던 그에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물론 시력을 되찾은 건 아니다.
시력보다 더욱 가치있는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준 생의 동반자를 곁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에게 새로운 삶에 눈을 뜨게해준 이는 바로 올해 3살 반의 안내견 ‘코코’다.
헤아리다가 지쳐 기억조차 나지 않을만큼 부딪히고 넘어져야만 했다. 그것도 수십년동안 말이다. 몸이 다치는 건 참을만했다. 하지만 세상이 온통 희미하게만 보였던 그에게 삶이란 없었다. 혼자서는 한 발짝도 걸을 수 없는데다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조차 어려웠다. 집을 떠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좋았지만 그리움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삶 자체에 희망이란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코코’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불과 2년이 채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코코는 삶의 동반자적 관계를 넘어 ‘삶’, 그 자체인 것이다.
빠르고 반듯한 걸음걸이, 당당하고 거칠 것이 없다. 자갈밭도 그에게는 잘 닦여진 인도일 뿐이다. 시각장애를 앓고 있는지 의심까지 들 정도다. 코코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코코만 곁에 있으면 그에게 눈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계단, 횡단보도, 건널목,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코코는 모르는게 없다. ‘주인님’의 행차에 코코는 최고의 의전비서이자 보디가드다. 최씨가 코코에게 말을 건넬 때 항상 ‘엄마’라는 말을 쓴다.
지난 2003년 11월, 삼성으로부터 코코를 분양받았다. 처음에는 코코도 익숙했던 훈련소를 떠나 새로운 주인을 만나야 했기 때문에 실수가 잦았다. 하지만 최씨의 변함없는 애정에 코코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침대밑은 코코의 보금자리다.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고 수신호를 하지 않아도 최씨의 속마음을 꿰뚫을 정도다. 최씨 역시 코코가 배고프고, 볼일 보고 싶거나 어디로 가고 싶어하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아직도 따뜻하지만은 않다. 버스나 택시를 탈 때마다 유쾌하게 받아주지 않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픈건 어쩔 수 없다.
그가 가장 속상할 때가 있다. 특히 여름에는 자주 있다. 코코와 함께 거리를 나가면 지나가는 ‘아저씨’들이 “통통한게 맛있겠다”라는 말을 한단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동반자인 코코가 그들에게는 한낱 ‘먹을거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때면 화가 치민다. 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
코코도 아플때가 있다. 항상 최씨 곁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코코의 신경은 상당히 예민하다. 자칫 자신의 무관심이 주인님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책임감 때문에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란다. 여름에는 움직이기 싫어한단다. 더위를 잘 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여름에는 코코를 위해 남편을 설득, 에어컨까지 한 대 장만했다. 그만큼 코코는 그녀에게 소중한 존재다.
우리나라의 안내견 제도는 후진국 수준이란다. 안내견을 훈련시켜 데리고 다니기 위해서는 1억여원에 가까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때문에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내견은 ‘그림의 떡’이다. 그나마 삼성의 복지사업 덕분에 전국적으로 60여명의 시각장애인들이 혜택을 받고 있지만 가까운 일본의 경우 1000여마리의 안내견이 사람의 눈이 되고 있다.
1시간내내 코코는 최씨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 눈을 감고 있다. 항상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씨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벌떡 일어난다. 코코는 최씨의 그림자다. 어쩌면 전생에 사랑했던 사이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들은 하늘이 맺어준 특별한 인연이다. 그녀가 말한다. “코코는 바로 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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