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권력을 휘어잡으려고 모리배들이 갖은 일을 꾸며대는 오탁(汚濁)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학문적 이상을 실현하여 온 백성이 격양가(擊壤歌)를 부르게 될 날을 꿈꾸던 선비들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기만하고, 세상을 전횡하려는 자들만이 세상경영에 참여하자, 큰 그릇들은 산속에서 혹은 강가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습니다. 세상을 거머쥔 자들의 기록 속에서는 그러한 예들을 찾기 힘들지만, 문학과 음악 속에서는 양(洋)의 동서와 시간의 고금을 불문하고 언제나 만날 수 있습니다.
더럽고 흐린 세상을 버린 은자(隱者)의 벗이라서 그런지, 여유와 품위를 가진 ‘흰 갈매기’ 백구는 다른 노래 속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조다가 낚싯대를 잃고/ 춤추다가 되롱이를 잃의/ 늙은이 망령(妄靈)으란 백구야 웃지 마라/ 십리(十里)에/ 도화(桃花) 발(發)허니 춘흥(春興)겨워 허노라.” 남창가곡 우락(羽樂)의 노랫말입니다. 뜬 구름 같은 세상공명 구태여 얻으려 하지 않고, 강물에 낚시 던져두고 임천(林泉)과 하나 된 삶. 어쩌다 눈먼 고기 하나 걸리면 술과 바꾸어 마시고, 날씨가 변해도 계절이 바뀌어도 늘 아름답고 편안한 자연 속의 삶. 바로 그 삶 속에서 백구는 세상 버린 선비와 함께 지냈습니다.
단종을 축출하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제물삼아 세조를 옹립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움켜쥔 당대의 모신(謀臣) 한명회가 백구와 벗한다며 한강변에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정자를 세웠습니다. 그러자 백구보다는 당시의 세도가나 명나라 사신들이 앞다투어 그 압구정에서 대접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규모가 얼마나 크고 호화스러웠던지 나라의 기강을 흐트러뜨릴 정도여서, 마침내 한명회의 사위인 성종이 그 정자를 헐어 버리라고 어명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정자는 없고 행정구역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한편, 파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임진강변에는 반구정(伴鷗亭)이 있습니다. 반구정은 압구정과 같이 ‘갈매기와 벗하는 정자’라는 말입니다. 조선 초기 명재상이며 청빈한 선비인 황희선생이 만년을 보낸 곳입니다. 부의 상징인 압구정과는 달리,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에 욕심 던져 마음 비우는 곳이지요.
오늘날 백구는 어느 정자에서 한가롭게 쉬어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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