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 백구(白鷗)는 어디서 쉬어갈까?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중도춘추] 백구(白鷗)는 어디서 쉬어갈까?

  • 승인 2005-10-07 00:00
  • 이승재 국악칼럼니스트이승재 국악칼럼니스트
“백구야 풀풀 나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로 시작하는 백구사(白鷗詞)는 우리음악 중 가사(歌詞)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노래입니다. 절제와 여유를 몸에 익힌 선비들이 즐기던 노래의 큰 갈래를 정가(正歌)라고 부르는데, 가사는 가곡·시조와 더불어 정가에 속하는 작은 갈래입니다. 담담하게 흘러가는 백구사를 부르거나 듣고 있노라면, 욕심 벗어 놓고 산수와 벗하던 옛 은일사(隱逸士)들의 경지를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부와 권력을 휘어잡으려고 모리배들이 갖은 일을 꾸며대는 오탁(汚濁)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학문적 이상을 실현하여 온 백성이 격양가(擊壤歌)를 부르게 될 날을 꿈꾸던 선비들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기만하고, 세상을 전횡하려는 자들만이 세상경영에 참여하자, 큰 그릇들은 산속에서 혹은 강가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습니다. 세상을 거머쥔 자들의 기록 속에서는 그러한 예들을 찾기 힘들지만, 문학과 음악 속에서는 양(洋)의 동서와 시간의 고금을 불문하고 언제나 만날 수 있습니다.

더럽고 흐린 세상을 버린 은자(隱者)의 벗이라서 그런지, 여유와 품위를 가진 ‘흰 갈매기’ 백구는 다른 노래 속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조다가 낚싯대를 잃고/ 춤추다가 되롱이를 잃의/ 늙은이 망령(妄靈)으란 백구야 웃지 마라/ 십리(十里)에/ 도화(桃花) 발(發)허니 춘흥(春興)겨워 허노라.” 남창가곡 우락(羽樂)의 노랫말입니다. 뜬 구름 같은 세상공명 구태여 얻으려 하지 않고, 강물에 낚시 던져두고 임천(林泉)과 하나 된 삶. 어쩌다 눈먼 고기 하나 걸리면 술과 바꾸어 마시고, 날씨가 변해도 계절이 바뀌어도 늘 아름답고 편안한 자연 속의 삶. 바로 그 삶 속에서 백구는 세상 버린 선비와 함께 지냈습니다.

단종을 축출하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제물삼아 세조를 옹립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움켜쥔 당대의 모신(謀臣) 한명회가 백구와 벗한다며 한강변에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정자를 세웠습니다. 그러자 백구보다는 당시의 세도가나 명나라 사신들이 앞다투어 그 압구정에서 대접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규모가 얼마나 크고 호화스러웠던지 나라의 기강을 흐트러뜨릴 정도여서, 마침내 한명회의 사위인 성종이 그 정자를 헐어 버리라고 어명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정자는 없고 행정구역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한편, 파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임진강변에는 반구정(伴鷗亭)이 있습니다. 반구정은 압구정과 같이 ‘갈매기와 벗하는 정자’라는 말입니다. 조선 초기 명재상이며 청빈한 선비인 황희선생이 만년을 보낸 곳입니다. 부의 상징인 압구정과는 달리,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에 욕심 던져 마음 비우는 곳이지요.

오늘날 백구는 어느 정자에서 한가롭게 쉬어갈까요?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4.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5.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헤드라인 뉴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교원들의 골머리를 썩이던 생존 수영 관련 업무가 내년부터 대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로 완전 이관된다. 추가로 교과서 배부, 교내 특별실 재배치 등의 업무도 이관돼 교원들이 학기초에 겪는 업무 부담은 일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2025년부터 동·서부교육청 학교지원센터(이하 센터)가 기존 지원항목 중 5개 항목의 지원범위를 확대하고 학교에서 맡던 업무 4개를 추가로 지원한다. 먼저 센터 지원항목 중 교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생존 수영 관련 업무는 내년부터 교사들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현재 센터에..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