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진의 충청비사] ‘세계적 陶鄕’ 흙을 빚어 富·명성 누려

[안영진의 충청비사] ‘세계적 陶鄕’ 흙을 빚어 富·명성 누려

24. 아리타의 李參平

  • 승인 2005-10-06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임란 日아리타로 끌려온 공주출신 조선도공 17세기초 자기제작 성공 유럽수출로 번영
심수관과 ‘양대산맥’… 14대손까지 이어져 계룡장학재단 현지학술탐사 지역관심 불러


아리타(有田窯)



한, 중, 일 한자문화
권 가운데 유별나게 도자기에 집념하는 민족이 있다면 그것은 일본이다. 임진란을 도자기 전쟁이라 부르는 까닭도 그런데에 있다. 임란 당시 왜군은 조선도공 400여명을 세 척의 군선에 싣고 퇴각을 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두 척의 도공은 ‘북규슈(나베지마 령)’에 떨구고 나머지 한 척의 40여명은 가고시마(鹿兒島)에 내려 정착했다.

그것이 두 영주 간의 묵계 때문인지, 풍랑으로 통제가 불가능했던지, 아니면 경황 중에 챙기지 못한 탓인지 그 까닭은 아직도 알려진 바 없다. ‘사츠마’의 14대손 심수관씨도 그 점이 아리송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든 그 바람에 ‘사츠마’와 ‘아리타’는 일본 도요의 양대 축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도자기에 관한한 신앙처럼 떠받들어 온 일인들은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권위를, 또 한편으로는 정신수양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전국시대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마무리 짓고 다도(茶道)를 확립시킨 게 도요토미(豊臣秀吉)라고 흔히 말한다. 어떻든 조선도공의 손에 의해 일본도요(陶窯)는 빛을 발했고 오늘날 세계 제일의 도요국(陶窯國)으로 발돋움했다. 그들의 도자기 선호도가 어느 정도인가 예를 들어보자.

임진란을 전후해서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백자 같은 자기를 보면 영주(大名)나 대상(大商)들은 성(城)과 천만금을 내놓으며 맞바꾸려 했다. 그 무렵 평민들은 표주박과 대나무마디를 잘라 밥그릇으로 대용했다. 오늘날 일인들이 잘산다고 뽐내지만 지금도 도자기라면 눈빛이 금방 달라진다. 오사카(大阪)에서 5대째 이조 청화백자를 모으는 집 ‘리세이도’ 주인은 ‘청화백자사면병’을 신주단지처럼 떠받든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태양아래 노출시켜서도 안 되며 함부로 누구에게 내보이는
일 자체도 금기시 한다. 그 도자기를 한 번 보는데 우리 돈으로 100만원을 줘야 한다는 풍문도 나돌고 있다. 이쯤 되면 일인들의 도자기 선호도는 가히 광적이라 할 만하다.



그는 어떤 인물인가



이참평, 그는 어떤 인물인가. 조선의 평범한 한 도공이 임진란 때 일본에 끌려가 ‘아리타(有田)가마’를 일군 대가로 도조(陶祖)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일본도요의 또 한축, 사츠마(薩摩)의 沈당길 고향은 전라도 남원(南原)이 확실하지만 이참평은 공주(公州)라고 알려져 있으나 일각에선 이설(異說)을 들고 나오
기도 했다.

경기도 이천, 전남의 강진, 경남 김해를 지목하는 이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아리타(窯)의 도공후예들이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 산 33-1번지, 박정자 야산에 ‘이참평 추모비’를 세워 놓았다. 지난 90년의 일이다. ‘아리타(有田)’ 도공후예들이 ‘한국도자기문화진흥협회’와 공동으로 세운 비가 그것이다. 이 점을 미뤄볼 때 李參平의 고향은 공주라고 보아 잘못이 없다. 하지만 비문내용 중 ‘李參平 일본으로 건너와’라는 구절을 놓고 한 때 한국 측과 마찰을 빚었다.

표현이 자진 도일(渡日)한 것처럼 되어 있어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李麟求(전 국회의원)씨도 그 때 비문 중 ‘일본으로 건너가’를 ‘잡혀가’로 정정해야 옳다고 주중한 바 있었다. 비록 400년 전 이야기지만 그쪽 도공 후예들과 李參平 후손 합의 아래 세운 추모비라면 출생지가 공주임에 틀림없으리라는 생각이다.

지난 2000년 8월 ‘계룡장학재단’에선 ‘일본역사탐사단’을 구성, 4박5일 일정으로 ‘아리타’에서 활동을 벌인 일이 있다. 해외 학술탐사를 10여 차례 추진한 바 있는 계룡장학회는 그때마다 귀국보고회를 비롯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인구 단장에 徐五善 부여국립박물관장, 成周鐸, 충대 교수, 姜영구 이사, 조중원 감사,윤건원 실장, 언론인을 포함 18명이 ‘아리타’ 현지를 누비고 다녔다. ‘아리타’는 인구 1만5000명이 사는 조용한 도시로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였다. 거리엔 달리는 차도 별로 없고 나다니는 사람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보기에 따라선 폐허의 도시 같기도 하고 회색빛으로 도시전체를 칠해 버린 듯한 인상이었다.

또, 4~5층 건물도 안 보이는 한마디로 추워 보이는 도시였다. 그러나 도시전체가 도자기 제조와 판매를 대물림하며 이에 매달려 사는 도시라 했다. 가마(窯)만 200여개, 300여개의 도자기 점포, 13·14대손들이 여기에 매달려 살아온 그런 도향이다. 졸음이 올 것만 같은 권태로운 도심, 여기서 짐짓 떠오르는 게 있다. ‘카뮈’의 소설 ‘타가자’에 나오는 암염도시(岩鹽都市)가 이렇듯 무미해 보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업장 안에선 부지런히 흙을 이기며 물레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李參平 태토를 찾아내다



‘아리타가마’를 일으킨 이참평은 본래 공주(公州)시 학봉리에서, 이조분청사기가 백자로 넘어가는 단계의 그 시기에 도자기를 구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 일행은 붙들려 오자마자 도자기를 구우라는 명을 받았으며 그것을 굽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었다. 도자기를 굽기 위해서는 태토(胎土)가 필요하므로 부득이 그 흙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산야를 찾아다닌 보람으로 이곳에서 그 흙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굽기 시작한 것이 ‘아리타야키’의 모태가 된다. 이들 조선 도공(陶工)의 손에 생산된 자기는 산 너머 ‘이마리(伊萬里)’ 항구에서 배에 실려 유럽으로 대량수출하면서 '이마리야키(伊萬里燒)'라는 이름이 붙었고 차츰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참평은 가미시라카와(上白川)의 덴구다니(天狗谷)에서 태토를 발견하고 가마를 구축, 자기제작에 성공했다. 이 시기에 대해선 여러 견해가 있으나 문헌을 종합해 볼 때 서기 1616년(元和 2년)이라는 게 학계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실도 그 동안 일본에서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가 적지 않았으나 계속되는 연구, 발굴한 결과 이참평의 위업을 누구도 부인 못할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다. 1965년부터 1970년에 걸쳐 ‘아리타’의 덴구다니(天狗谷) 고요지(古窯地)를 본격적으로 발굴 앞에 여섯 개나 되는 승염식요(乘炎式窯)를 찾아내며 그 개요(開窯)시기를 17세기 초라 결론지었다.



일개 도공 책임 어디까지?

‘계룡장학회탐사팀’은 아리타 시내를 비롯 ‘뎅구다니(天拘谷) 광석장’과 ‘도자기박물관’, ‘조선도공공동묘지’, ‘이참평 묘’, ‘도조 이참평신사’ 등을 둘러봤다. 탐사 도중 ‘사츠마’의 ‘심수관도요’와 견주어 이런저런 견해가 오고 갔다. 14대를 이어오며 창씨를 거부했던 심씨 일가에 이야기가 미치자 이인구단장은 이런 말을 말했다.

“이참평의 창씨개명은 묘지팻말에도 ‘陶祖 金ケ江 三兵衛’라 되어 있지 않은가. 조상이 내려준 이가성을 나라를 버린 몸이 내세우기가 역겨워 ‘금강근처에서 온 사람’ 거기에 삼베이란 ‘참평’의 일본발음이다. 우리 모두 좋은 쪽으로 생각합시다. 일도 양단식의 이분법 논리, 충신이 아니면 반역자라는 식의 시각엔 문제가 있어요. 비록 심씨 가문만 못하다 할지라도….”

“李씨성을 내세우기 싫어 성이 없다는 뜻으로 금강변 ‘삼평’이라 자처했다면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왜적 앞에 나라와 사직, 백성까지 버리고 쫓겨 다니기 바빴던 조정이었다. 그런 정황 앞에 일개 도공에게 왜 포로가 됐느냐, 창씨를 왜 했느냐고 묻기에는 사안이 너무 벅차다.” 그것은 일종의 정황(情況)참작론이었다. 이 말에 조사단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인바 있다.

이참평 일행 도공들은 살아남기 위해 태토를 찾아냈고 끝내는 ‘청화백자’를 구워내어 영주로부터 ‘사무라이(武士)’라는 신분상승의 혜택을 받기에 이른다. 이후 ‘아리타’는 번영을 거듭해서 도쿠가와(德川)막부 말기에는 유럽시장에 대량수출을 했다. 원래 도자기의 본고장은 중국으로 그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유럽)으로 수출을 해오다가 이때부터 일본에게 기선을 빼앗기게 된다.

청(淸)나라와 명(明)나라의 쇠퇴기를 틈타 '아리타' 도자기는 더없이 호황국면을 맞았다. 이는 일찍이 나가사키(長崎)에 와 살던 네덜란드(オランダ)인들이 유럽시장의 이모저모를 귀띔해준데 연유한다. 그리고 길안내까지 해주었다는 설이 전해온다. 일본 도자기는 오늘날에도 ‘아리타’와 ‘사츠마’ 두 축으로 대별되며 번영을 거듭하고 있으나 여기엔 아이러니가 있다. '아리타'가마를 일군 李參平은 도신(陶神)으로 또 ‘아리타’는 세계제일의 도향(陶鄕)으로 꼽히지만 그 후손은 주눅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사츠마’의 沈수관은 명장(名匠)으로 그 고장의 유지요, 필객으로 행세를 하고 있다. 부와 명성에 걸맞게 한국정부에선 그에게 ‘명예대사’로 임명한 바 있다. 일본의 NHK와 ‘문예춘추’에선 가끔 그의 글과 얼굴이 비친다. 규모로 따진다면 ‘아리타’와 ‘사츠마’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사츠마’는 연 30억원, ‘아리타’는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태평양전쟁 패전 후 일본전체가 실의에 차 있을 때 ‘아리타’ 도자기가 효자노릇을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로 전해온다. “조상은 더 없이 훌륭했는데 이 자손은….” 이것이 요즘 ‘13대 참평’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독백이라 전해온다. 일상생활이 궁색해 보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는 90년대 초 공주(公州) 학봉리, 이참평 추모비 앞에서 한없이 울기만 허더라고 했다. 그도 이젠 팔순, 그는 아들 14대 ‘쇼호헤이(省平)’와 함께 오늘도 조그마한 다락방에서 흙을 이기며 물레를 돌리고 있다.

그것은 세습이며 가업이기 때문이다. “못난 자손이 되어….” 스스로 낮추며 되도록 외래인과 탐방객을 피한다고도 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징용을 피하기 위해 철도국 임시직원으로 일하다 패전 후 먹고 살기 위해 쏘다니다 가업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하지만 그들 부자는 들어앉아 오늘도 도자기를 빚고 있다. 시공(時空)도 변이를 하고 역사 또한 쉼 없이 흐른다고 했다. “조상에게 도전한다”며 물레를 돌리던 그 때 만난 심수관도 이젠 팔순 노인이 되어 은퇴를 하고 아들 15대 수관(一煇)씨가 가마를 맡고 있다. 15대는 14대 수관과는 감각이 다르더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자신은 조선이라는 하늘과 일본이라는 땅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더라는 이야기다. 있을 수 있는 젊은 세대의 시각이라 하겠다. 남원성(南原城)과 태백산자락 청송(靑松, 沈씨고향)이야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14대와는 이렇게 다르다. 반면 얼마간 기가 꺾여 있는 아리타의 ‘參平, 省平’ 부자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면 콧날이 찡해지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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