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만그만한 일상에서 축제에 대해 얼마든지 허용적 분위기로 해석할 수 있지만 문제는 난립이다. 지방자치시대 도래에 이은 한국방문의 해를 기화로 정부가 지역축제를 은연중 권장한 것이 불을 댕긴 셈이었다. 이것이 그대로 고양세계꽃박람회 같은 지방박람회, 광주비엔날레 같은 대형문화제에 지역축제 수를 합해 많게는 1000개에 이른 배경인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축제공화국'이라며 안 좋은 폐단이 입초시에 오르내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 지역에 사과축제가 4개씩이라는 이유만으로 돌을 던질 일은 아니나 너무 경쟁적이다 보니 그게 그것인 판박이 축제로 문화적 헤게모니를 상실한 점, 누구를 위해 왜 하는지 하는 주체 중심성이나 지역 정체성을 망각했다는 점까지 덮어두진 못할 것이다.
축제의 소유권 분쟁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똑같은 시민이 즐길 억새축제를 놓고 사상구와 사하구가 억새밭의 몇 퍼센트가 자기네 쪽이라며 거품 무는 부산 꼴은 언제든 재연될 소지가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한집 같은 이웃인 서산시와 태안군이 서로 종주권을 주장하며 '육쪽마늘전쟁'을 치르는 것도 그 일단락이다.
때에 따라 중복이 도리어 유리할 수도 있다. 가령 드라마 '서동요'의 부여 세트장과 연꽃축제가 열리는 궁남지에 익산 무왕의 말통대왕릉과 선화비의 소왕릉을 잘 이으면 더 큰 브랜드 파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이렇다할 축제요소 발굴 없이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그저 흥청망청 놀고 마시는 소모성 축제라면 선택과 집중에 의해 구조조정하는 편이 보다 이롭다.
감사원의 유사축제 감사도 이런 취지로 이해된다. 부실의 기준이 자유시장경제 논리에 함몰되면 못쓰지만 안 그래도 재정자립도가 열악하다는 판에 대안문화도 돈도 아닌 실패한 지역축제가 주민에게 미칠 파장은 작지 않다. 지역 이미지 제고와 지역 이익 창출의 쌍끌이 역할 중 어느 하나도 변변찮을 때 그 존폐를 생각해봐야 한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방대한 축제를 열어 권력을 과시했던 제정러시아의 황제 흉내를 내는 단체장이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아야 하는 지역축제의 기본적인 성공 요건을 무시하고 수용자 아닌 기획자가 좋아하는 것만 반영하고 있지 않는지 또한 돌아볼 일이다.
한때 '마이클 잭슨 비빔밥'이 유행했던 게 생각난다. 서울에 온 마이클 잭슨이 비빔밥을 즐겨 먹어 붙여진 음식이름인데 나중에 이를 상품화해서 우리끼리 장사진을 선 채 사먹은 적이 있다. 왜 진작에 외국인들에게 우리 비빔밥을 알리지 못했을까 하는 반성이 앞섰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그런 면에서 금산 인삼축제와 보령 머드축제, 강경 젓갈축제는 마케팅 전략이 시범적으로 빛난 경우인데 특히 금산인삼축제는 세계 10대 축제 등극의 다부진 꿈을 키우고 있기도 하다. 그러려면 인삼을 외국인 입맛에도 맞추고 특화된 프로그램과 역사적이면서 현재적으로 펄펄 숨쉬는 전통문화 접목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축제를 기필코 국제행사로 만들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어깨에 힘 좀 빼고 지역에 적합한 축제 모드로 전환하기 바란다. 축제의 주인인 주민의 참여가 핵심이되 "축제는 억압되고 간과되었던 감정표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 기회"라는 신학자 하비 콕스의 정의와 정반대로 지역축제가 주민을 억압한다면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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