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 짚신 장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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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초대석] 짚신 장사 이야기

  • 승인 2005-10-03 00:00
  • 최영근 한남대 교수최영근 한남대 교수
옛날 어느 마을에 짚신을 만들어 파는 부자(父子)가 살았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만들어도 아버지가 만든 짚신만 잘 팔렸습니다. 아들이 그 비법을 물어도 아버지는 언제나 묵묵부답 가르쳐 주지 않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되어 아들이 다시 물어도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없이 ‘털’이라는 한마디 말만을 남기고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그 후에도 계속 짚신을 만들어 팔게 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가 남긴 ‘털’이라는 말이 짚신을 다 만든 후에 터럭을 잘 뜯어내어 깔끔하게 마감해야 된다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임을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것은 상품을 만들거나 작품을 할 때나 어떤 일에 있어서 마감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짚신장수 이야기에서 더 음미해 볼 수 있는 부분은 비법을 직접 가르쳐 주지 않은 아버지의 배려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털을 제거하는 방법을 쉽게 가르쳐 주었다면 아들은 짚신을 잘 만드는 노력은 하지 않고 털 뜯는 요령에만 치중하다가 결국 제대로 된 짚신을 만드는 데 소홀히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남긴 ‘털’이라는 한마디 때문에 아들은 그 말의 비밀을 찾기 위해서 짚신 만드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연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털을 제거하는 요령뿐만 아니라 아버지 보다 더 좋은 짚신을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참을성과 함께 짚신을 만드는 마음의 자세도 닦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첨단과학시대, 스피드 시대,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빠르고 쉽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과거 보다 더 만족하고, 겸손하고 진지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조급하고 각박하게 살고 있습니다. 힘든 일, 공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보다 쉽게 돈 벌고, 쉽게 출세하고, 쉽게 모든 것을 가져야 하는 조급증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새로운 것을 쉽게 따라가고 쉽게 버리는 냄비 근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질은 때에 따라서 역동적인 특질로 이해되고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장점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질만으로는 2만달러 시대를 열고,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주 옮겨 심는 나무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듯, 유동적인 특질은 깊이 있고 세련성 있는 문화를 만들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민족의 진정한 장점이라고 하는 은근과 끈기, 근면과 정직이라는 말이 잊혀지고 있는 세월입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문화적 경쟁력을 갖춘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은근과 끈기의 유전인자를 촉발시키는 사회적인 풍토가 절실한 시대 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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