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배기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의사 될것”
하얀색 가운을 입고 있는 두 사람
김윤철(34) 평화노인병원 내과 전문의와 심윤미(31) 옥천 곰바우 한의원장. 충남대 의대와 대전대 한의과대학을 각각 나온 이들은 결혼 4년차 부부다. 남편 김씨가 아내인 심 원장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001년 김씨가 금산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로 활동하던 시절. 인턴, 레지던트 등 10여년 넘게 병원밥만 먹어온지라 김 전문의에게 연애는 꿈같은 얘기였다. 결국 이를 가엾게 여긴 은사(恩師)까지 나섰던 것이다.
연애시절, 그에게는 잊지 못할 이야기가 하나 있다. 당시 심 원장은 보령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언젠지 모르지만 그 날은 유독 헤어지기가 싫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 막차 시간을 놓쳐버렸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았다. 술도 한 잔 먹었겠다 흔들리는 택시 안은 편안한 침대였다. 한참 ‘음냐 음냐’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예쁜 그녀가 노래를 불러달란다. 그것도 조용한 밤, 한적한 시골길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운전하는 택시안에서 큰소리로 말이다. 그녀의 창가가 아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차창 밖을 바라보며 그가 불렀던 ‘세레나데’. 감동했는지, 황당했는지 택시기사가 그만 길을 잃어 1시간이상 헤맸단다.
물론 애틋한 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양의사와 한의사들의 대립이 첨예했던 때, 그들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양의사아 한의사는 관점과 접근방법에 상당한 차이가 있어 진료과정이 판이하게 다르다. 외부에서는 서로의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할만큼 민감하지만 둘만의 시간에는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그때만큼 서먹한 적이 없었단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갈등 속에서도 이들은 ‘부부’라는 이름 앞에 쉽게 타협점을 찾으려 애쓴다.
3번이나 청혼했지만 거절당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심 원장이 직역(直譯)이 아닌 의역(意譯)으로 던진 그의 메시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답답한 마음 끝에 마지막 청혼을 위해 택한 장소는 보령시립공원묘지다. 수많은 혼령들이 잠자고 있는 백주대낮에 겁도 없이 꽃을 내밀었다. ‘결혼해 달라’는 직역이 통했던 것이다.
의료업계가 어렵다고들 한다. 옛날처럼 ‘사’자(字)의 대표적 직업이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주변에 빚더미에 올라앉는 것은 고사하고 목숨까지 버리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빚을 갚지 못해 빚쟁이들이 (한)의사들을 병원에 강제로 취직시켜 월급을 차압하는 사례도 있단다. 그러다보니 일부에서는 반칙을 쓰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을 금방 치료하는 병원을‘명의(名醫)’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병을 빨리 낫게 하려면 그만큼 독한 약을 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의료현실, 이익경쟁을 위해 인명을담보로 잘못된 길을 택하느니 힘들더라도 원칙과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이들의 생각은 변함없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은 삶의 든든한 동지(同志)다. 무엇보다 이들은 두 살배기 아들 종현군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의사가 되겠다’고 맹세한 ‘부부(夫婦)’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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