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당시 구마모토 지사 호소카와(오른쪽)가 필자와 인터뷰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 |
마지막 황손 이구씨의 모친 이방자여사 호소카와 前총리와 친척관계로 밝혀져
“잉태 못할 징후가…” 주치의 말 실수로 황후 자리서 밀려나게 된 ‘비운의 여인’
대학서 재색 겸비한 가요코부인과 만나 연애시절 매일 장미로 구애작전 펼치기도
신당결성 후 부인이 구마모토 유세 도맡아 정권창출 성공 퍼스트레이디로서 ‘한몫’
세간에선 호소카와 총리부인 가요코(佳代子)와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친척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필자는 세미나를 비롯 취재, 강연, 학술조사 등을 이유로 70여 차례 일본 땅을 밟았다. 그 바람에 그들 부처를 여러 차례 만난 바 있다.
한 번은 파티 석상에서 이방자 여사 이야기를 꺼내자 “그 분은 저의 친척입니다”하며 가요코가 정색을 하고 나섰다.
정말일까? 가요코의 친척이 아니고 부군 호소카와의 친척이라는 걸 필자는 나중에야 알게 됐다. 결혼하면 자신의 성(姓)을 접고 남편 성(姓)을 따르는 일본이다. 그렇다면 남편 집안은 ‘나의 친척’일 수 있다.
“비운의 여주인공이었어요.” 그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방자 여사는 원래 히로히토(裕仁) 천황 황후로 간택된 나시노모토(梨本宮) 가문 출신이었다. 그러니 고노에(近衛) 가문과는 친척이 되는 셈이며 양가는 다 같이 귀족 중의 귀족이었다. 하지만 황후로 간택된 방자(方子)였지만 운명의 신은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주치의의 말 한마디가 엄청난 비극을 몰고 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건강엔 이상이 없으나 잉태를 못할 징후가 있사옵기에….”
거기엔 보이지 않는 음모가 있었다.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해서 혈통을 중시하는 황실에서 잉태를 못할 몸이라니 그것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 바람에 히로히토 황비는 방자여사의 4촌 언니로 뒤바뀌고 말았다. 방자 여사는 조선 침략과 때맞춰 영친왕과 정략결혼을 한다. 그 결과 주치의의 진단은 빗나갔고 그녀는 출산을 하기에 이른다. 그 소산이 바로 얼마 전에 세상을 뜬 이구씨다. 이에 주치의는 스스로 배를 가른다. 방자 여사는 그야말로 비운의 여인이었다.
구마모토 서해에 남긴 명시
그럼 가요코는 누구인가.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가네자와시(金澤市) 우에다(上田) 가문의 소생이다. 그녀는 서예·문필·스피치·노래·무용·테니스·골프 등에 재능을 갖춘 보기 드문 여성이다. 대학은 부군과 같은 조오지(上智)대 영문과를 나와 런던과 파리상사에서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영어와 불어 실력은 가히 외교관급 수준이라 해서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문학적 소양도 대단하다는 평이었다. 한 예를 들어 보자. 구마모토 서해에는 아마쿠사(天草)라는 해상국립공원이 경관을 자랑한다. 그 해변에 위치한 아마쿠사소오(莊)라는 고급 요정은 늘 손님맞이에 바쁘다. 그 요정 객실 벽엔 아담한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운젠(雲仙·화산이 폭발했던 곳)의 산허리를 바라보면서 아마쿠사(天草)의 바다를 뱃속에 한껏 챙겼습니다.’ -호소카와 가요코
명시(名詩)를 대하는 기분이다. 기개 넘치는 어느 대장부의 직감인들 이럴 수 있으랴 싶다. 이쯤 되고 보면 호소카와가 반할 수밖에 없었을 일이다. 안응모(전 내무부장관)씨가 충남지사 시절, 호소카와지사 초청으로 구마모토에 건너갈 때 필자도 취재차 동행을 했다. 저녁파티에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행사벽두. 가요코는 환영인사를 유창하게 해냈다.
“호소카와의 안사람입니다”로 시작된 4~5분간의 환영사였다. 깔끔한 스피치는 장내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파티가 절정에 이르자 그녀는 노래까지 부르고야 말았다. 필자의 객기(?)가 분위기를 그렇게 몰고 갔다. 초면이 아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그녀의 소맷자락을 잡고 단상 마이크 앞으로 끌어냈다.
파티 장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앙코르 송까지 불렀다. 누군가는 필자를 향해 “아니? 저 사람은 손님인데…”라며 황당해 하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여자의 길’이라는 노래를 부른 것으로 기억한다. 앙코르 송은 ‘능금의 계절’로 가수를 뺨칠 노래솜씨였다. ‘호소카와는 정말 행복한 인물이야….’ 누군가 귀엣말을 했다.
호소카와 부부는 연애결혼을 했다. 그들은 조오지대학 동문으로 대학시절 골프 서클에서 자주 만났다는 후문이다. 일화는 또 있다. 호소카와는 휴가 때 파리로 날아가 가요코가 근무하는 상사를 노크했다. 그녀가 출근(아침)할 무렵이면 호소카와가 정문을 지키다 장미꽃을 건네주곤 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열애 끝에 그들은 결혼을 했다.
호소카와는 20대 신문기자 시절 골프 실력이 프로급이었다고 동료 언론인은 회고한다. 핸디 3의 실력. 주위에선 그가 너무 골프에 빠진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지사시절 북해도에서 동계체전이 열린 일이 있었다. 그때 현(縣 )대표 스키선수로 출전, 국민들의 박수를 한 몸에 받은 일까지 있었다. 그때가 48세였다.
호소카와가 총리가 되기까지엔 부인 가요코의 내조가 컸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신당창설 때만 해도 그러했다. 부군은 구마모토에 거의 내려온 적이 없었다. 신당을 결성, 전국유세를 다니는 통에 정작 자신의 선거구는 내팽개친 상태였다. 대신 가요코가 구마모토를 누비고 다녔다. 그런 가운데 압승을 했다. 신당은 36석을 낚아 올렸다. 그 후 연합체를 구성, 정권을 창출해낸 것이다. 가요코는 퍼스트레이디로서 한 몫을 했으며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처럼…. 다음은 호소카와 지사와의 인터뷰내용이다.
호소카와 지사와의 회견
▲필자=1년 만에 또 뵙습니다. 공주와 菊水町, 충남도와 구마모토현 간의 결연에 있어 교량역을 해온 저로서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오늘날 양측이 활발한 교류를 펼치고 있습니다만 충남도민의 이해를 돕는 뜻에서 ‘구마모토’를 소개해 주시지요.
▲호소카와=저의 ‘구마모토’는 숱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 시대를 주도해온 ‘인물의 고장’이기도 하구요. 예를 들면 ‘建武의 中興’때와 남북조 두시기에 걸쳐 활약한 기구치(菊池一族), 쌍칼잡이(二刀流)의 시조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시마바라의 난(島原의亂)의 아마쿠사(天草四郞)가 있고 저의 집안이야기입니다만 도쿠가와 막부 초기부터 줄곧 이 고장을 지켜온 그런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필자=쌍칼잡이(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도 이곳 사람이군요. 소년시절부터 그의 전기를 여러 번 읽었습니다.
▲호소카와=그 묘가 아소산(阿蘇山) 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이렇듯 ‘구마모토’ 사람은 천품이 강직하면서도 합리적인 면이 있다고나 할까요. 여담입니다만 원래 칼은 두 손으로 쓰는 게 상식인데 쌍칼(二刀流)을 쓴 것만 봐도 이 고장 사람들은 합리적인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
▲필자=정치일선에서 활동하시다 행정책임을 맡은 데서 오는 고충 같은 것은….
▲호소카와=30대 초반에 두 번 참의원을 거쳤고 작년 이맘때 지사를 맡았습니다. 행정책임자란 때로 외롭습니다. 온갖 책임은 지사가 져야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보람을 갖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국회의원은 706명인데 비해 지사는 혼자라서 외로울 때가 있지요.
▲필자=구마모토현의 행정특성이라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호소카와=농공병진이라 말한다면 평범한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 농수산물에서의 소득 제고, 공업에서는 첨단기술의 도입과 개발, 그리고 관광수입을 높이자는 게 그 골격입니다. 저의 현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농업 현이 돼서 소득증대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고등소개, 벼농사, 축산 등 퍽 다양한데 농업 역시 기술혁신 없인 안 됩니다. 저희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육우(肉牛)의 ‘동결 수정관이식’에 성공을 했습니다. 시험관의 아기 소에 수정을 시키는 작업. 이것은 자랑할 만한 성과입니다.
▲필자=첨단기술이라면 ‘로봇’ 계열 말씀이신지요?
▲호소카와=‘테크노폴리스센터’ 그 자체를 말합니다. 이것을 지정받고 있는데 그것이 완성되면 큰 복음을 가져 올 것입니다. 産·學·住 연계를 위해 계획권역, 약 950㎢에 이르는 대역사지요. 그것이 목표대로 간다면 현의 출하 액은 10년 전의 약 2배인 1669억 엔에 이를 것입니다.
▲필자=자매현인 ‘구마모토’의 번영을 저희도 지켜 볼 생각입니다. 아참! 위로의 말씀이 늦었습니다. 지난번 폭설로 피해가 크셨지요?
▲호소카와=40년만의 폭설로 곳에 따라선 1m가 넘는 눈사태라 했습니다. 길이 막히고 비닐하우스가 내려앉는 등 토마토· 딸기·수박 등이 전멸하는 통에 가슴을 태웠습니다.
▲필자=피해액은?
▲호소카와=250억 엔이 될 걸로 추산, 그 구제책으로 융자, 대부 등을 해주고 있으나 아직도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필자=‘구마모토’에 1400여 세대의 한국교포가 있는 걸로 아는데 지사께서 도와주실 계획 같은 게 있으신지….
▲호소카와=아직은 별 탈 없이 생활하고 있는 줄 압니다. 국책은행의 융자와 하위직 공무원의 기용, 시영주택의 분양 등 점진적으로 좋아질 것입니다. 챙겨보겠습니다.
▲필자=충남도, 나아가선 한국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고, 또 가르칠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평소 생각하신 바를….
▲호소카와=작년에 충남을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그 때 내 눈에 비친 것은 ‘신생 한국’이 성장일로에 있고 활기에 차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강한 인상 말입니다. ‘한강변의 기적’이라고 들었습니다. 대단한 의욕과 발전상에 한국민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필자=대전을 다녀오신 소감은 어떠했습니까?
▲호소카와=역시 잘 다녀왔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청소년들의 애국심 같은 걸 보고 부럽다는 생각도 했고요. 일본청소년들에겐 한국청소년들처럼 애국심 같은 게 부족합니다. ‘에고’에 치우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걱정합니다.
▲필자=충남도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호소카와=첨단기술 같은 건 아무래도 일본이 앞섰다고 봐야지요. 이것을 나눠드리고 싶고, 반면 애국심이라거나 전통·문화·역사에선 한국으로부터 배워야지요. 그렇게 서로가 교류를 해야 합니다.
▲필자=충남에 오실 기회는 언제쯤이신가요?
▲호소카와=충남지사님의 친서 속에 폭설피해에 대한 위로의 말씀도 담겨 있었습니다. 또 한 번 건너가 여러분들을 뵙고 싶습니다.
▲필자=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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