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문학에는 좋은 산파(産婆)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빗줄기로 커튼을 둘러치고 빗방울 소리를 음악으로 들으며 조용한 시간 속에 모처럼 갇혀본다.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 몸을 가두고 머릿속으로는 무한한 상상(想像)의 산란(産卵)을 해 본다.
문학은 인습이 길러낸 자동화된 지각에서 벗어나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데서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 상상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면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는 것이다.
상상력은 대상을 종합적 직관적으로 파악해서 개성을 표현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세계로 확산되어 공감을 불러 오게 한다. 상상 속에 작가의 생명력이 투영되어 창조적인 언어로 빚어져 인간의 삶을 절실하게 표현할 때 언어 예술인 문학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어찌 사고(思考)를 하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있겠는가. 또한 사고한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면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작가는 고독을 사랑하는가보다.
고독하지 않고서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독은 사고하게 하며 창조의 틀인 것이다. 작가는 은둔하는 것이 아니고 작업을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감옥 안에서 독서와 사색을 통해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왔다.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성서를 썼고, 고은도 김지하도 그리고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감옥에서 나온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빗줄기와 음악 속에 갇혀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속에 갇혀 시간의 흐름도 잊고 잠시 번잡한 세상과 나를 단절 시킨 채 백지와 마주 앉아 보는 것은 어떨까?
빗물 속에 애써 힘들게 이룬 삶의 파편들을 떠내려 보낸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삶을 위로 할 수 있는 좋은 시 한 편 건져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펜을 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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