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성 문화체육부장 |
매춘부이며 알코올 중독자인 시엔과 연인 사이로 발전해가는 사실을 테오에게 털어놓는가 하면 브뤼셀의 전시회에서 자신의 그림 ‘붉은 포도밭’이 400프랑에 팔렸다는 소식을 접한 후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희망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다소 흥분된 듯한 필체로 말한다. 고흐는 어쩌면 자신이 짊어진 가난과 고독을 견뎌내는 방법으로 동생이나 가족들에 대한 편지쓰기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우리지역 원로 화가들 가운데는 클래식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시골 마을에서 그림 작업에 몰두하는 권영우 화백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클래식 선율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수준을 넘어 그는 음악을 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화폭에 담는 화가다. 6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차르트, 브람스, 바흐의 곡들을 좋아한다. 그런 곡들을 듣다 보면 화폭 위에 낭만적인 분위기가 표현된다는 것이다.
클래식 마니아 화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다름아닌 지치우 화백.
그의 나이 올해로 63세이니 어느덧 환갑을 넘긴 나이다. 그가 살아가는 금산군 추부면요광3리 마을의 꼬마들 눈에는 그저 시골 할아버지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실에는 언제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가 즐겨 듣는 곡 가운데 하나는 차이코프스키의 1812서곡. 이 곡은 지난 봄에 지역 화가들 사이에 클래식 마니아의 좌장 격으로 통하는 유근영 화백이 가져다 준 것이다.
화가들이 이처럼 음악에 빠져드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고독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서 혼자 힘든 작업을 해야 하는 그들만의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그들은 늘 외롭기 그지없다. 권영우 화백이나 또는 지치우 화백이 클래식 마니아가 된 가장 큰 이유 역시 고독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노모를 모신 채 그림만 그리며 단 둘이 살아가는 지치우 화백.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도구 가운데 하나가 다름아닌 음악인 것이다. 고흐에게 있어서 가족에 대한 편지쓰기가 삶의 고뇌를 덜 수 있는 해방구였다면 권영우, 지치우 화백에게 클래식 역시 하나의 해방구인 셈이다.
어디 동서양의 화가들만 삶의 고뇌를 짊어졌겠는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서민들 역시 두 어깨에 짊어진 고뇌의 무게는 비슷비슷하리라.
두 어깨가 왠지 움츠러 드는 듯한 이 가을, 삶의 무게를 다소나마 덜어줄 수 있는 해방구를 저마다 하나씩 준비하는 것은 어떨는지. 그리하여 그것을 밑돌 삼아 고흐의 편지에 깃든 희망가를 자신의 희망가로 키워나가는 것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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