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들을 때는 으레 술집이나 유흥음식점,다방 등지에서 종업원들이 손님에게 친절하고 불편하지 않고 손님 비위에 거슬리지 않게 주의하면서 곁에서 손님을 받들어 모시는 경우를 우리는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일부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서비스’는 아직 까지 사회에서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 각하여 나름대로 몇가지를 생각하여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서비스는 내 직업이나 내 임무에 대한 ‘원의’(라틴말의 voluntas)에서 발로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라틴어의 ‘voluntas’는 ‘직업이나 임무에 대한 의지의 뜻’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 즉 내직업이 원하고 나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느 방향이고 무엇을 원하는가를 그 ‘뜻’을 채우는 것이다. 본인이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할 때 ‘노트르담 대성당’에 가끔 기도하러 가곤 하였는데 세 청년이 성당의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순례자들이 의자에 앉았다가 나갈 때 의자가 비뚫게 놓이면 이 걸상을 바로 놓곤 하였다. 그래서 물어 보았다. 하루에 몇 시간 봉사하느냐고·3시간씩 한다고 했다. 바로 이 청년들은 비뚫어진 의자를 바로 놓아 순례자들이 편하고 깨끗하고 질서있는 성당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하기위하여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개인의 자유로운 마음에서 사랑의 마음이 나오는 서비스다. 본인이 한 레스토랑에 12시가 되어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 들어섰다. 그런데 종업원이 열심히 빈 테이블의 꽃과 네프킨을 새로이 놓고 있었다. 물론 모든 테이블위에 꽃과 냅킨이 세팅이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세팅을 하고 있었다. 손님이 없었고 세팅이 다 완료된 상태에서 그 작업을 새롭게 또하는 것이었다. 내가 들어 갔을 때 그 종업원은 “여기로 앉으세요”하고 자기가 새롭게 세팅한 곳으로 안내했다. 손님이 없어도 테이블을 끝까지 꾸미고 새롭게 장식하는 종업원이 바로 이 레스토랑을 일등 레스토랑으로 만들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셋째, 현대 산업사회의 ‘서비스’는 사랑을 동반한 소임이어야 한다. 이제 유흥업소에서의 ‘서비스’라는 개념을 넘어서 현대 산업사회 안에서 인간들의 활동이 하나의 ‘서비스’로 갈 때 그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한다고 본다.
인도의 캘커타 마더 데레사의 병원에는 전세계에서 수많은 청소년과 남녀들이 봉사대열에 참여하고 있는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저들이 이곳에 자기 나라에서 오기까지 경비를 저축하여 비행기 값과 채제비까지 마련하고 와서 아주 자유로우면서 성심성의껏 사랑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보수로 오직 사랑만으로 환자들의 대소변은 물론 목욕, 청소 ,침구정리, 세탁, 병원의 모든일, 밥짓는 일 등 모든 것은 자기들이 해야할 사랑의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서비스는 자신을 바치는 헌신에 가까웠다.
우리 산업사회에서도 각 산업현장에서 이같은 운동이 벌어진다면 좋을 것이다. 이제 ‘서비스’는 우리 산업사회의 산업과 사회 환경을 한층 향상시키는 분야로서 ‘서비스’의 품질을 높일 때라고 본다.
진정 서비스는 남을 생각하고 내가 자유롭고 원해서 내 소임에 사랑의 신념을 실어 사회를 밑에서 받치는 자원으로 발전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서비스는 천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무궁 무진한 인류 발전의 한 분야임을 우리가 느껴야 할 때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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