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택 논설위원 |
그런데 사내가 품은 ‘연정’을 털어놓자 세상은 뒤집어졌다. 집안 어른들은 물론 친척들, 주변 사람들까지 “지금이 사랑타령할 때냐”고 손사래를 쳤다. 처음엔 “뜬금없다”는 표정이더니, “살림살이가 거덜나는 판에 무슨 사랑”하는 힐난이 나오고, 급기야는 “살림 못한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 사랑 쪽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거”라는 ‘음모론’까지 돌았다. 더 기가 막힐 일은 당사자인 그녀마저 그의 사랑을 의심 가득한 눈길로 보는 거였다.
아니 사랑이 변할 수 있는 건가. 왜 내 이 진정한 사랑을 몰라주는가. 한 대학교수가 ‘왜 그의 진정성을 몰라주느냐’고 항변해봤지만 사람들은 들은 척도 않는다. 야속한 사람들. 우리 사랑이 이뤄진다면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더 나아질텐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앙숙이던 몬테규가와 캐플릿가의 화해를 이끌어 냈듯, 세상의 갈등과 반목을 치유해낼 수 있을 텐데.
사내는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반드시 사랑을 이루리라 다짐했다. 반대하는 집안 어른들에게 ‘거역’(拒逆)의 뜻을 밝히고, 설득에 나섰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다 내놓겠다고 했다. 달라는 대로 다 줄 테니 결혼해달라는 줄기찬 애정공세가 드디어 결실을 맺은 건가. 그녀가 특별히 시간을 내겠다며 만나주겠다는 게 아닌가.
둘의 만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다. 만남의 자리엔 두 사람의 관계가 불륜으로 치닫지 못하도록 양쪽에서 세 사람씩 나와 앉았다. 사내는 담판을 지을 요량으로 대뜸 “결혼합시다”고 치고 나왔다.
“결혼은 무슨. 살림이나 잘 하세요.”
“살림을 그리 못해 애들을 굶기느냐고 비난만 하지말고 직접 들어와서 살림을 해보는 게 어때요?”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게 어디 그리 쉽나요. 주위의 눈도 있고. 사람들 좀 죄지만 말고 용돈도 좀 늘려줄 궁리 좀 하세요.”
“그러게요. 그러니 당신이 직접 살림을 맡으라니까요.”
만남은 냉랭하게 끝났다. 하지만 사내의 마음에서 그 뜨거운 사랑마저 끝난 건 아닌 듯 싶다. 그는 머리를 식히겠다며 여행을 떠났고 추석을 앞두고 돌아왔다. 모두가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연정은 잊고 살림이나 신경 써주면 좋겠는데, 사랑타령이 다시 시작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눈들이다.
사내의 연정이 어긋난 건 짝사랑에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현실을 냉정하게 보지 못한 탓이다. 아니 사랑을 해보기나 했는지 의심이 간다. 진정성이 있다고 어디 모든 사랑이 받아들여지던가. 사람들이 스토커를 비난하는 게 어디 그들 사랑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인가. 또 연정이 이뤄지면 갈등과 반목이 치유되고 세상이 한결 나아질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이 사내가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대통령은 이쯤에서 연정론을 접는 게 좋겠다. “상대 당을 흠집내고 증오를 조장해 국민을 분열시키는 일에 시간의 대부분을 써버리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꿔보자는 대통령의 뜻은 전적으로 찬성하며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제도만능주의는 위험하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제도가 아니라면 정치의 관행, 정치인의 의식을 고쳐서 적응해나가는 게 옳다.
연정공세는 이쯤에서 접고 당분간 꾹 다문 입으로 오르는 주가와 함께 경기가 풀리기만을 느긋하게 기다리심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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