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의 산업화에 대한 시도는 1966년 프린스턴대학에서 시작되었다. 바우몰과 보웬 교수는 공연예술의 산업화를 주장하는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인간의 창의력은 한 대의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을 감소시키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 냈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45분짜리 슈베르트 현악 4 중주곡을 세 사람 이하로 줄여서 연주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 글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생산 기술의 발달에 따라 기술 집약적 상품의 원가는 점차 하락하는 반면 공연예술과 같은 노동 집약적 상품의 원가는 상승할 수밖에 없어 일반 상품과 공연예술의 인플레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연예술은 누군가 지원을 하여 적자부분을 메워주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것을 시장 실패의 원리라고 한다.
날씨가 잦아들면서 대전과 충남에서 거의 동시에 청소년 연극제가 열렸다. 충남에서는 열한 개 고등학교가 참여했으며 대전에서는 여섯 개 고등학교가 경연을 벌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평소 대전의 참여 학교가 열 개교가 넘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갑자기 반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내용을 살펴봤더니 대답은 엉뚱한 데서 들을 수가 있었다.
연극 동아리에서 작품을 만드는 데는 늦은 시간까지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밤늦도록 일일이 따라다니며 지도할 선생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열정이나 봉사심을 가진 선생님은 별로 없었다.
작년 어느 쯤엔가 대도시 고등학교에 일진회 문제가 불거졌다. 소위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가 사회 이슈화된 것이다.
한 번이라도 문제가 된 동아리나 지도교사가 전담해서 가르칠 수 없는 단체는 해체해야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책임져줄 선생님이 없으면 억지로라도 문을 닫아야 했다는 것이다.
7차 교육과정에는 연극 과목이 신설되어 고등학교에서 정규 수업시간에 가르칠 수 있게 됐다. 연극이 새로운 문화 콘텐츠의 기초 과목이라는 생각에 눈을 뜬 결과다.
연극은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애니메이션, 멀티미디어 등의 콘텐츠 산업에 진출할 학생들에게 중요한 인간화의 기초를 제공한다.
청소년 연극제에서 최우수 연기상과 지도교사상은 교육감상이 주어진다. 당연히 교육감이 나서서 시상하고 치하해야 하는 자리다. 교육감이 어렵다면 관련 장학사라도 보내야 하는 게 도리다.
그런데도 두 곳 모두 그 흔한 대리 시상자 한 명 보내지 않아 지체 높은 상을 전달할 사람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학생이 지켜봐야 했다.
문화산업을 일으키는 장기 전략은 교육에 있다. 당연히 문화의 세기는 교육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 미래 교육에 대한 비전 제시는 지도자의 당연한 덕목이다.
하찮은 시상식이라도 챙겨야 하는 이유는 시장실패의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부추겨야 살아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것이 문화예술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2000년대 이후 향후 10년의 문화 정책이란 백서를 내 놓은 적이 있다. 그들이 내세운 정책 기조의 첫 번째가 교육이었다. 교육을 엄두의 화제로 내세운 까닭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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