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의 두 번째 구에 보이는 ‘지음(知音)’은 무슨 뜻일까요? 옛날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에게 종자기(種子期)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종자기는 백아의 음악을 잘 알았습니다. 백아가 높은 산을 표현하면, 금방 “야아, 대단히 높은 산인데”하며 백아의 연주를 칭찬하고, 백아가 흐르는 물을 연주하면, “정말 큰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는 것 같아”하고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어느 날 안타깝게도 종자기가 죽고 말았습니다.
백아는 자신의 마음과 음악을 이해했던 귀중한 친구를 잃게 되자, “종자기가 듣지 못하는 나의 음악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라고 말하며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습니다. 열자(列子)에 보이는 이 이야기에 근거하여,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하는 친한 벗’을 지음(知音)이라고 부릅니다.
‘지음’처럼 음악과 관련된 표현들을 찾아보면 그 용례가 적지 않습니다. ‘금실이 좋다’의 ‘금실’은 ‘금실지락(琴瑟之樂)’의 준말입니다. ‘부부간의 화목한 즐거움’이란 뜻을 가진 이 한자어는 본래는 ‘금슬지락’이라고 읽습니다. ‘금슬’은 현악기 ‘금’과 ‘슬’을 함께 지칭하는 어휘입니다. 이 두 악기는 늘 함께 편성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기에 부부에 비유 됩니다.
한편, ‘형제간의 우애’를 뜻하는 ‘훈지상화’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의 “형은 훈을 불고 아우는 지를 분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점토를 구워 저울추 모양으로 만든 ‘훈(壎, 塤)’과, 대나무로 만든 ‘지’는 부드러운 음색을 가진 관악기로, 두 소리의 절묘한 어우러짐은 마치도 사랑 깊은 형제의 눈길 같다고 여겨집니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익직(益稷)편에 ‘합지축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축으로 음악이 시작되고, 어로 그친다’라는 뜻입니다. 방망이로 상자의 바닥을 쳐서 소리 내는 축과, 등줄기에 톱니가 박힌 나무 호랑이를 대나무 채로 긁어 소리 내는 어는 고려 때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악기로 제례악에서 음악의 시종을 알립니다.
이렇게 음악의 언어로, 우리 삶속에 상존하는 중요한 인간관계를 비유하거나, 일의 절도를 나타내는 표현들은 꽤 있습니다. 희로애락이 터져 나와 마디에 맞게 조화를 이룬 전통음악 속에 우리 삶의 모든 모습이 담겨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렇지 못한 요즈음의 음악 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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