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개학하자마자 거름 주고 가꾸는 것을 뒤로만 미뤘던 새싹을 떠나보냈다. 으레 새 학기가 되면 전입생과 전출생이 많긴 하지만 나의 애간장을 무던히도 끓인 일명 학급의 골칫덩이가 한꺼번에 전학을 간 경우는 처음이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으나 점점 죄책감이 밀려왔다. 승재와 지숙이는 학습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 모두 또래에 비해 채워야 할 부분이 많아 각별한 지도가 필요한 아이였다.
승재는 학업성취가 또래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언행이 난폭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천진한 유아 상태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성은 없으나 반복될수록 습관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부모님은 사업 때문에 바빠 연세가 지긋한 고모가 돌봐주신다. 고모님은 잘 먹고 씩씩하게 뛰놀아 그저 건강하게 자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하시고, 부모님 또한 학습적인 것에 크게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몇 번이나 크게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학습 능력이 많이 부족하니 집에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도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나는 좀 귀찮기도 하고 승재의 개인적인 자존감을 위한다는 핑계로 또 요즘에는 학부모들이 나머지 공부를 싫어한다는 여러 가지 구실거리를 찾아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점점 무관심해진 상태로 1학기를 끝마쳤다.
지숙이는 학습 이해력이 부족하고 겁을 잘 냈다. 낯선 환경이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다른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너무나 조용하고 행동이 느려 나의 인내의 한계를 몇 번이나 시험했다. 부모님말로는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성향이 짙어 걱정이 컸다고 했다. 지숙 엄마의 각별한 관심과 노력 때문에 서서히 좋아지고는 있었지만 나 나름대로 각별한 관심을 쏟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담고 방학을 맞이했다.
방학 중에 승재와 지숙이가 떠난 빈자리. 난 아직도 두 녀석의 책상을 치우지 못하고 있다. “승재야, 지숙아, 선생님은 너희를 포기한 건 아니었단다. 단지 시간을 미뤘을 뿐이었어. 그런데 이런 변명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선생님이란 걸 너희가 가슴 저리게 알려주고 있구나!”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마음 깊이 심어 준 두 꼬마 철학자에게 감사하며 아직 내 품에 남겨진 서른 명의 철학자에게 나는 또 하루하루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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