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섬’의 일부, 케르켈렌 군도에서)
이 글을 읽으며 내 상상(想像)은 무일푼이 되어 진정 자유롭게 이국의 낯 선 땅을 떠돌아 다녔다. 베니스의 모래 언덕을, 어둠이 내릴 무렵 여인들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는 한녘진 골목길을, 이태리의 포석이 고르지 못한 오래된 좁은 골목길을 작가와 함께 비밀스럽게 누비고 다녔다.
삶, 고독한 삶이 아니라 생활을 완전히 개방해 놓음으로써 정신은 자기만의 것으로 간직 할 수 있는 삶을 누렸다. 이것이야말로 글로벌과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꿈꾸는 일이 아닌가! 우리는 바쁜 일과에 쫓기다 모처럼 휴가를 얻어 여행을 떠나지만, 동행한 가족이나 지인에 둘러싸여 타인을 의식하고 배려하느라 피곤이 더 쌓일 때가 있다. 쉬러 갔다가 고행(苦行)을 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서 돌아 올 때가 많다.
진정한 휴식이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 선 곳에 홀로 떨어져 아무 것도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도 될 때 가슴 깊은 곳에 잔잔히 고이는 샘물 같은 평안함이 아닐까 싶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문학에 동참하는 일은. 비싼 경비를 들이지 않고 지루한 비행기도 안 타고 편안하게 마음껏 여행을 하다 왔으니.
우리는 문학을 통해 이국적인 문화와 내가 서 있는 자리의 함수(函數)관계를 발견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기발견을 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이것은 고통스러운 즐거움을 동반한다. 문학이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들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문학의 본질은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의 출발은 불온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섬세한 감정과 세련된 심미안을 갖게 할 것이다.
이제 찬 바람이 불고 휴가지에서 돌아 온 사람들이 제 자리를 찾을 시간이 되었다. 저마다 버리고 오지 못한 삶의 무게로 혹시 더 지치고 피곤해진 것은 아닌지, 그러면 꼭 ‘섬’으로 다시 여행을 다녀오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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