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진의 충청비사] 영욕의 54년… 충청의 정론지 거듭나

[안영진의 충청비사] 영욕의 54년… 충청의 정론지 거듭나

중도일보가 겪은 지역언론의 시련기

  • 승인 2005-08-25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 1988년 9월 속간 1호 발행 당시의 모습. 세로편집이던 신문지면이 눈길을 끈다
▲ 1988년 9월 속간 1호 발행 당시의 모습. 세로편집이던 신문지면이 눈길을 끈다
80년대 계엄사 한마디에 지면 좌지우지
편집국장 회의서 許차관 훈시에 ‘반발’
‘권력’에 맞서다 희생 당한 언론인 많아
1951년 창간… 격동의 세월속 정·복간 거듭
내달 1일 54돌 ‘지역목소리’ 온전히 담아내




광복(60주년)의 달을 보낸다. 해방 당시 민족의 앞날은 그저 양양할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이는 환상이었다. 종전과 동시에 그어진 38선, 6·25전쟁, 동서의 냉전, 이데올로기 이 모두는 우리를 짓눌렀다. 그러나 용케도 이를 초극, 선진국대열에 합류, 오늘에 이른다.

정치, 경제, 국방 등 할 말은 많지만 이번엔 언론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충청권엔 1930년대 말 ‘中鮮일보’가 있었지만 그것은 일인들 신문이었다. 해방이 되자 대전엔 ‘동방신문’이 등장했고 6·25 직후 11월 11일엔 대전일보, 그리고 9개월 후인 51년 9월1일엔 중도일보가 닻을 올렸다. 두 신문은 ‘전시가판’ 형태로 경쟁을 벌이다 73년 박 정권의 1도 1사주의 정책에 의해 통합을 한다. 중도일보는 여기서 문을 닫았고 훗날 88년 언론자유화 물결에 힘입어 복간, 지역사회의 일꾼으로 나섰다.

경영진으로는 이웅렬, 이기창 체제를 거쳐 현재는 김원식사장이 맡아 운영하고 있다. ‘충청투데이’ 전신은 ‘대전매일’로 이 신문은 89년에 출범, 3사 정립(鼎立)시대를 형성해왔다. 방송에선 KBS를 선두로 MBC, TJB 3각 구도로 24시간 전파를 쏘아올리고 있다. 방송은 속보에서 신문은 기록성에서 제 몫을 한다. ‘아사히’신문 후카시로(深代郞)는 ‘天聲人語’ 칼럼니스트로 유명하지만 “TV가 등장할 때 신문은 설자리를 잃는가 했는데 신문 몫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언론을 ‘제4부’니 ‘무관의 제왕’ 또는 ‘목탁’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괴테’ 같은 시성(詩聖)은 ‘기자란 파리 같은 존재’라 매도하며 내 쫓으라 호통 친 일이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제퍼슨’은 평소 “언론 없는 정부를 택하기보다 자신은 정부 없는 언론 쪽에 서겠다”고 했지만 막상 집권을 하고는 그 어느 대통령보다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가졌다.

한국 언론은 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30여 년간 호된 시련을 겪었다. 집권층은 언론을 자신들의 나팔수로 이용하려 했고 이에 저항하다 희생당한 언론인은 한 둘이 아니다. 그 시대 어두웠던 단면을 되돌아본다.




그 시대 자학하던 얼굴들

“한국 언론인이 부럽다”고 말한 사람은 구마니치(熊日) 미나미(南) 편집국장이었다. 그와는 70년대부터 터놓고 지내는 사이로 부럽다는 내용인즉 한국의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은 마음먹기에 따라 출세 길이 열려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국회의장, 장관, 부총리, 국영기업체장과 지자체장을 누린 언론인이 어디 한 둘인가. 일본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기자 출신으로 빛을 본 건 호소카와(細川隆熙)총리와 마츠모토(松本成張) 정도라 했다. 하지만 ‘아사히’ 출신, 호소카와는 20대에 기자직을 접고 정계에 입문, 선거로 참의원 2기, 구마모토(熊本)지사 두 번을 거쳐 수상에 올랐다. 그 다음 마츠모토는 특급열차(JR)가 쉬지 않고 그냥 스쳐가는 소 도읍 주재기자출신이다.

오랜 세월 특종하나 캐본 일이 없는 무명기자로 일하다 소설가로 변신. 오랜 세월, 갈고닦은 글 솜씨를 인정받아 나카소네(中曾根) 수상의 스피치 라이터로 발탁된 케이스다. 직업의식(장인정신)이 강한 일본에선 벼락출세란 생각하기 어려울 뿐더러 정치를 하려면 일정한 수순을 거쳐야 한다.

그러니까 한국 언론계는 욕망에 찬 자들의 출세 길, 에스컬레이터 역할을 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언론출신이 입각을 하거나 힘쓰는 자리에 오르면 언론탄압(정화)을 서슴지 않았다는 역사성을 지녔다. 그 바람에 희생자가 생기고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빈번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5·6공 시절 자학하던 여러 얼굴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申모국장은 세미나가 열리면 분위기를 엉뚱한 곳으로 몰고 가 집행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기 일쑤였다. 언기법(言基法)을 설명하는 고법의 부장 판사를 겨냥 원색적인 언사로 면박을 주었다. “여보! 한국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이 미국 것과 직결되는데 유독 언기법만 서독에서 끌어다 붙이는 이유가 뭐야? 나도 법조출입을 오래해 봤지만 당신 같은 사람 처음이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에 부장판사는 앞으로 편협과 관계를 끊겠다며 식사도 거절하고 자리를 떴다. 申국장은 또 입각한 고모부(仁村 계열)에 대해 ‘주책없는 늙은이’ 또는 ‘나이가 드니 타락하는 모양’이라고 투덜댔다. 또 최(崔)모 국장은 역대 문광부 장관은 회의 때 회장단 테이블 말석을 애써 고집했는데 이번 장관은 좌석을 단상에 따로 마련해 놓고 군주처럼 굽어본다며 소리쳤다.

또 그 무렵 沈모국장은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고 그러다 보면 닭이 울겠지”라고 자신의 심정을 드러냈다. 曺모 국장은 현 정권이 계속 악수를 두는 게 어쩐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편협회장, 이주필은 부산 세미나에서 룸메이트인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외아들이 서울대 데모대장이라 유치장 출입은 물론 정학이 잦아 졸업을 포기, 도쿄대로 전학시켰다고 했다.

동아일보 주필이라면 혹 몰라도 서울신문 주필 아들이 그 모양이라면 누가 곧이듣겠느냐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 회장은 영남출신이라 그만하지 만약 우리였다면 벌써 요절났을 것”이라고 응수하자 “이야기가 그렇게 돌아가네”라며 웃어넘긴 일이 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세월, 사디즘(Sadism)의 늪에서 인종(忍從)하며 살아왔다.




회의장을 깨버린 객기

5·6공 시절엔 편집국장 회의가 잦았는데 나가보면 보도지침을 하달 받거나 ‘훈시’를 듣는 게 고작이었다. 81년이던가. 편집국장 회의 때 일이다. 저 유명한 허 차관. 모두에 동아일보를 질타하더니 지방지를 돌아가며 욱지르고 나섰다. 국가관과 언론의 사명, 시대정신, 제작태도 모두에 문제가 있다며 꾸짖었다. 이 때 불쑥 필자가 제동을 걸었다. “차관님! 저의 신문은 몇 점을 놓고 계십니까? 중앙지도 순종하는 지라 저희들 지방지는 항상 알아서 기었습니다.

이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정말 심하십니다” 얼떨결에(사전계획 없이) 내친 말이었다. 이 때 허 차관의 얼굴엔 짐짓 경련이 이 듯 했다. 마이크를 ‘쾅’ 내리치며 “이런 분위기라면 회의가 필요 없다.”며 고함을 쳤다. 회의장은 순식간에 살얼음판으로 변했다. 허 차관은 퇴장을 했고 회의장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누구도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속담에 ‘말을 아끼면 중간은 가고 철없이 날뛰면 화상을 입는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돌출행동이었다. 일방적으로 국장들이 기압(?)을 받는데 누군가 한마디 변명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당시 필자는 지방지 편집국장 협의회 회장을 맡았기 때문에 불나방이 횃불에 대들듯 뛰어든 셈이다.
회의는 그렇게 해서 깨져 버렸다. 한참 뒤 누군가가 커피한잔을 빼들고 와 “여보, 허 차관 성깔을 몰라서 그래! 지난 번 동아일보(仁村)를 그렇게 들쑤시고도 끄떡 않는걸 보라구. 하지만 기왕 엎지른 물이니 두고 봅시다.”라며 위로를 한다. 모 국장은 “안 회장! 애들은 다 컸어?”라며 걱정을 했다.

나중에 이 소식을 듣고 누군가는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사나이’라고 했다. 그 때 문공부에선 대전 아무개는 ‘럭비 볼 같은 자’라 했다던가. 이 사건 이후 불이익을 걱정해 왔으나 탈없이 지나갔다. 그래서 주변에선 큰일 치르는 사람은 가슴이 넓은 모양이라고 허 차관을 화제로 떠올린 일이 있다.





사령관 詩를 신년호 1면에?

역시 80년대일이다. 하루는 권총을 찬 떡대 좋은 군인이 편집국장실을 찾아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봉투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사령관님이 보내는 것입니다.” 열어보니 포고령은 아니고 협조의례 공문도 아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시(詩)였다. 이 시를 신년호 1면에 실으라는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어이가 없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데 “그럼, 그렇게 알고 가겠다.”며 일어서는 걸 주저 앉혔다.

그것이 어렵다고 해도 이쪽 이야기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시 구절은 잊었지만 내용 또한 반열에 낄만한 수준이 아니다. 국토 잘 지켜 승공통일을 하자는 격문으로 채워져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것을 실어달라는 것까지는 좋다. 군 장성이 미숙하나마 시를 생각한다는 건 높이 살 일이다. 60년대에 박 정희 대통령의 시가 도하신문에 실린 일이 있었다. 어설픈 내용이지만 순박성에 짐짓 감동한 일이 있다. 그 생각을 떠올리며 시 처리를 놓고 궁리중인데 그 장교는 거듭 1면을 고집한다. 그것도 신년호에…. 속이 뒤틀려 필자는 한마디 쏘아 붙였다.
“안됩니다. 1면은!”
“왜 안 됩니까?”

“좋소! 그럼! 1면 머리에 넣죠. 대신 대통령 부부 사진은 빼는 겁니다.”
그 시대는 신년호 1면 머리엔 으레 대통령부처사진을 실었다. 그 사진에 주름이 가거나 흠집이 나면 편집국장, 공무국장, 사주까지도 크게 불이익을 받던 시대였다. 대통령 부처 사진을 빼고 사령관시를 넣겠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며 필자의 손목을 잡았다. 때를 봐서 간지에 싣겠다고 약속을 하고 돌려보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있는가 하면 때 없이 선포하던 계엄령 때문이다. 계엄 하에선 신문은 예외 없이 계엄사의 손을 거치기 마련인데 그 주무(보도관)가 중령, 소령이었다. 그들은 멋대로 “빼라, 넣어라”를 밥 먹듯이 자행했다. 그래서 군대가 신문을 우습게 보는 풍조가 생겼다.




中都日報 창간 기념일

오는 9월 1일은 중도일보 창간 54주년 기념일이다. 모진 시련과 풍도를 헤치고 오늘에 우뚝 선 중도일보. 김원식사장을 중심으로 전 사원이 뭉쳐 보다 나은 신문, 자양가 높은 정보 전달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그대로 지면에 드러난다. 오늘의 언론 오늘의 기자는 ‘파이어니어’ 라거나 ‘울트라’ 또는 투사가 아닌 슬기로운 전달자라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고전적 시각에선 유능한 기자란 발로 뛴다했는데 이젠 인터넷 앞에 오래 앉은 자가 명 기자 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과거엔 오보를 해도 ‘기자니까’ 또는 ‘아니면 말고’ 쪽으로 이해를 해왔지만 앞으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뚝심이나 열정에 앞서 균형감각 같은 걸 저버리면 실격을 한다. 또 한 가지, 신문을 안 읽고 독서를 외면한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레저(가계부)항목을 한 번쯤 더 생각했으면 싶다. 월 신문 한부 값은 1만 원선이다. 가구마다 신문이 들어가는 날 이사회는 밝아올 것이다.
▲ 사진은 2004년 7월 행정수도 확정 당시 중도일보의 기사를 보며 웃고 있는 연기·공주지역 주민 모습. 중도일보는 반세기 동안 지역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역의 목소리를 담아내는데 선봉장 역할을 다해왔다.
▲ 사진은 2004년 7월 행정수도 확정 당시 중도일보의 기사를 보며 웃고 있는 연기·공주지역 주민 모습. 중도일보는 반세기 동안 지역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역의 목소리를 담아내는데 선봉장 역할을 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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