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내일로 참여정부 임기의 딱 절반이다. 기억이랄 것도 없이 재작년 2월 25일 동장군의 기세가 아직 등등하던 국회 앞마당 취임식에서 옥색 넥타이 휘날리며 새 출발하던 제16대 대통령을 언 손 불며 지켜보던 때가 엊그제만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반 병이나 남았다고 환호하지도, 반 병밖에 안 남았다고 탄식하지도 못할 상황인 것 같다.
처음엔 그래도 잘할 것으로 믿는 국민이 92%나 됐다. 역사의 운전기사답게 대통령은 자신을 사회 변화의 도구로 쓰라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초반부터 아마추어리즘과 개혁 일방주의로 삐걱대더니 반환점을 도는 시점의 지지도가 20%대에 간댕간댕 매달려 있다. 지지도 얘기라면 YS와 DJ도 집권 초반에는 95%를 넘었었다. 권력의 칼자루를 휘두르고 싶은 욕망만 눌렀던들, 검찰과 국정원이 정권의 자정기능에 충실했던들, 그들은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았을 것이고 X파일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실상은 “대화 자체가 안 되고 정상적 민주주의가 안 되는 상황”으로 축약되는 진한 회의가 잘 대변해준다. 거미줄 같은 이해의 네트워크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할말은 아니다. 국민의 기대가 자신의 실상을 넘어섰다면 실상이 기대를 따르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집권의 절반은 낡은 사고방식에 대처하는 의식은 일깨웠으나 사회통합 측면에선 실패작이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한편으로 죽을 쑨 경제는 이 정부에 새겨진 ‘주홍글씨’였다. 그냥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할까. 가출을 화려한 외출, 간음을 황홀한 반란, 이혼을 절반의 성공이라는 판에 반환점을 도는 기념으로…? 그 다음엔 우리가 갈망하는 진실의 절반만이 말로 표현된다는 경구에 동의해 버릴까.
문제는 그런데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절반의 희망이 절반의 절망이듯 절반의 성공은 절반의 실패라는 점이다. 새 대통령은 어디든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핸즈 프리’ 상태라며 도시락 싸들고 따라다니며 신발 끈 매주고 싶은 책사(策士)를 기대한다고 전에 깐족여놓은 걸 다시 읽으니 스스로 무안해진다.
이제 남은 임기 절반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할 차례다. 무엇을 하기 전에 우선 온 몸에 가시로 날 세운 장미처럼 연약함을 감추려들거나, 연극은 성공했는데 관객이 대(大)실패라며 혼자서 자족하는 ‘자뻑 증후군’부터 치유하는 게 좋겠다. 명분과 노선의 깨끗한 오른손을 내보이며 남의 탓만 하면 정말로 이경자의 ‘절반의 실패’에서 며느리의 부덕으로 아들이 빼빼 마르고 잘되지 못한다고 우기는 시어머니처럼 추해지는 수가 있다.
또 그러면 임기 후반도 자꾸 시끄러워질 테고, 제아무리 권모이고 술수인 정치라도 시정잡배의 한탕치기와 구분이 뚜렷하지 않을 것 아닌가. 반환점에서는 갈등과 대결을 대신하는 극복과 수용의 리더십, 그 유전자에 보기 좋은 청등(靑燈) 하나 걸어둘 일이다. 당뇨 환자가 웃으면 긍정적 유전자에 불이 켜져 혈당치가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어떤 유전자를 밝히느냐로 정권의 운명도 갈릴 것이란 얘기다.
남은 절반은 그 길에 독이 있을지라도 가야 한다. ‘옳은 길이라면 주저 없이 간다’는 부속실장의 국정일기 제목처럼 그렇게 가다가 달콤한 사랑의 독(Love Poison)을 만날지도 모른다. 조석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가만가만 폭염을 다독이며 계절의 반환점을 준비하는 걸 보라.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몇 번이고 도막난 임기 반환점이지만 아직 반이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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