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윤정 (주)테라 대표 |
정부산하기관들의 직접적인 실태조사에 관공서들의 통계조사 및 관련협회들의 자료조사, 대학들의 관련논문조사에 복지정책 조사까지 별의별 조사서가 다 날아오며 거기에 회신용 봉투를 넣은 우편물과 알바까지 동원한 직접 방문조사원들 까지 가세한다.
이곳 대덕에 벤처기업들이 몰려있는 특성으로 인한 건지, 아니면 전국적인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다 보니 웬만한 작성 협조 요청에는 눈 하나 꿈쩍 안 하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설문지하나 성심껏 작성해 주려면 없던 회사 비전까지 머리 쥐어뜯으며 적어야하고 회사의 재무제표까지 들춰봐야 겨우 작성할 수 있는 시험수준이니 대충 이름만 적고 넘어가지 않을 바에야 일주일에 몇 번씩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업초창기에는 무슨 중요한 일인 것 같아서 오는 대로 열심히 작성해 주었지만 하다 보니 만만치가 않은 그야말로 ‘일’ 인 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조사기관만 다를 뿐이지 대부분이 비슷한 내용들로 요즘 같은 첨단시대에 그러한 정보들이 공유가 안 되어 늘 새로 조사해야 한다는 것도 어이없고 늘 비슷한 내용을 또 한 번 작성 해주어야 하는 기업입장에서는 짜증과 함께 맥이 빠진다.
그동안 그렇게 애써서 작성 해준 것들은 다 어디로 가고 다시 또 비슷한 자료작성을 요구하는지 이거 다 받아가서 뭘 하나 싶다.
기업지원을 하려해도,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려해도 우선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니 그 준비과정에 모든 자금과 시간과 인력을 다 쏟고 정작 실행할 여력은 안 남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 어쩌면 실제 실행할 생각은 없어서 앉아서 관련서류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심술궂은 생각도 든다.
하는 쪽에서는 그렇게 해서 나중에 뭐라도 내놓을 자료가 마련돼야 한 일에 대한 성과가 입증되겠지만, 오늘도 설문서를 재촉하는 메일을 받고 도대체 누구를 위한 조사인지, 왜 하는 조사인지 그 근본목적이 의심스러워진다.
물론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선 그 준비과정이 철저해야 함을 알지만 준비과정만 열심히 하다보면 정책이 바뀌고 시기도 지나 소용없는 준비들이 되는 경우도 있고 이렇듯 설문지만을 돌려서 근거자료로 삼는다면 자칫 탁상정책이 될 수 도 있다.
하다못해 조사해간 결과물이라도 다시 배포해 주어야 이런 것이 만들어 졌구나 알 수 있을 텐데 받아만 가고 결과물을 볼 수 가 없으니, 언제쯤 그 자료들을 근거로 실제 기업지원과 정책반영이 이루어지나 기다리다 보면 같은 기관의 또 새로운 설문지를 받게 되고 그만 허탈함과 실망에 어디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협조요청을 해도 이젠 신경을 안 쓴다.
요즘 다시 대덕 R&D 특구법으로 인한 각종 조사서가 넘쳐나고 있는데 그런 조사서들을 받아드는 기업입장은 이젠 그만 자료 수집은 끝내고 그 자금과 그 인력과 그 시간을 기업의 현장에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껏 조사해간 그 많은 가상의 정책들을 단 한번 써보기도 전에, 목 빼고 기다린 보람도 없이 기업들이 다 고사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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