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백화점에는 창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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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백화점에는 창문이 없다

  • 승인 2005-08-19 00:00
  • 김용관 건양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김용관 건양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
공연의 효과를 높이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환영(幻影)효과라 해서 조명이나 음악으로 그럴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관객들이 ‘아하 그렇구나’ 하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이화(異化)효과라는 것으로 소위 ‘낯설게 하기’의 방법이다. 조명을 밝게 하고 햇빛을 들게 한다든지 숫자를 말하거나 차트 등을 활용하여 관객들이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지성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백화점에는 창문이 없다. 물론 구조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형 백화점일수록 매장 근처에는 절대로 창문을 두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위에 말한 공연의 효과와 연관이 있다. 손님들이 햇빛을 받거나 환한 가운데 놓이면 구매력이 떨어진다. 구매 충동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조명 효과와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 햇빛을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의도로 매장에서는 신나는 음악을 틀되 가사가 없거나 낯선 음악만 튼다. 가사를 잘 알거나 쉽게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음악은 생각 없이 따라하게 되고 정신을 음악에 빼앗기기 때문이다.

백화점에 창문을 내지 않고 잘 모르는 음악을 트는 이유는 지성을 둔화시키고 감성을 자극해서 구매효과를 높이고자 하는 고도의 판매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백화점에 창문을 내고 안내고는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자유다. 문제는 우리 중 누구나가 그 보이지 않는 유혹에 빠져들어 패가망신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연정이다 도청이다 해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대통령은 연정을 제안하고 과거사의 공소시효 연장까지 제안하며 지역감정 해소만이 이 나라의 살길이라고 부르짖는다. 그런데도 주민이 뽑아준 선량들은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한다.

도청 공포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데 언제부터 도청이 시작됐고 언제까지 도청을 했는지 확실치가 않다. 어디까지를 처벌해야 하고 어디까지가 허용되는지도 애매하다. 누구를 탓해야 하는 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 지도 모를 지경이다.

온통 세상이 창문 없는 백화점 같다는 생각이다. 우선 창문을 열어야 한다. 찬바람이 들어오고 햇볕이 들어야 제 정신을 차릴 수 있다. 대책 없이 물건을 구매하고 후회해 봐야 이미 때가 늦었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지키기 어려운 유혹이다. 사랑 고백은 일방의 자유다. 그러나 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허락을 받아내야 한다. 사랑한다고 일방적으로 고백하고서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스스로 화를 내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동의가 없는 연정 제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객들이 백화점 측에 왜 창문을 내지 않느냐고 탓할 수는 없다. 물건을 사 가지 않으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맛난 음식을 잔뜩 먹어놓고 배탈 난 것이 당신들 때문이라고 식당 측 대문을 발로 찰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신을 차려야 할 사람은 우리다. 우리의 주권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음모니 술수니 하는 정국을 두 눈 똑바로 뜨고 헤쳐가야 한다. 얼마 있으면 선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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