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의 차남인 박용오 전회장의 폭로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17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해외 자회사를 통해 800억원에 이르는 돈을 해외로 밀반출했다는 것이다. 3남인 박용성 회장의 폭로에 따르면 전회장의 재임시에 2800억원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했다는 것이다. 또 두산 건설의 유상 증자시 총수일가 28명이 은행으로 293억원을 빌렸는데 이에 대한 이자 138억원을 회사 돈으로 상환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같이 엄중한 형사처벌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다.
재벌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가족기업이 아닌 막중한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공적 조직이며 상법상 주주들로 구성된 주식회사이다. 주식회사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주식이라는 형태로 자본을 끌어들여 대규모 자본조달과 전문적 기업경영을 하기 위한 조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주식회사는 껍데기는 주식회사인데 실제 운영은 개인기업 내지 가족기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에 두산그룹의 총수교체가 주주총회나 이사회와 같은 공식적 의사결정기구를 통하지 않고 가족회의에서 결정돼 버린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도 총수의 개인적 판단과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후진적 소유구조와 낙후된 기업경영은 비단 두산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나라 38개 재벌기업의 총수지분율은 평균 4.94%에 불과하며, 대부분 두산 그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족기업 형식을 통해 경영되고 있다. 글로벌 일류기업이라 할 수 있는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경우에는 총수지분율이 0.84%에 불과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제왕적 지위와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경우에도 총수지분율은 3.34%에 불과하며, 30대 중반에 불과한 회장 아들이 현대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경영전면에 나서고 있다.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들이 주요 의사결정 포스트에 자리잡고 있을 때 어떻게 합리적 토론과 결정이 이뤄질 것인가?
물론 총수의 형제나 자녀들이 전문경영인보다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일치로 인해 강력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전략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업의 경쟁력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업경영은 지금과 같이 불확실성이 높고 복잡한 글로벌 환경하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한때 세계경영의 전도사로서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김우중 회장이 이끌던 대우그룹을 생각해 보자. 김우중이라는 개인적 역량과 카리스마에 의존해 운영돼 왔던 세계적 기업이 하루 아침에 몰락하고 만 것은 개인에게 의존하는 경영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개인적 능력보다는 제도나 시스템을 통해 기업경영을 하는 것이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며 글로벌 스탠더드의 출발점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