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비와 장군총에 대한 열띤 설명을 하는 중국가이드와 통역을 하는 조선족 가이드의 얼굴을 통해서 일제 강점기와 한국동란을 통해서 한반도의 반을 빼앗겼다는 묘한 뉘앙스의 표정을 읽은 것은 약소민족인 나만이 갖는 느낌일까?
다시 장소를 옮겨 북한의 신의주와 맞보고 있는 단동을 방문하였다. 단동은 마치 부산과 중국의 상해를 연상케 하였다. 야경을 비교하면 단동은 불야성이며, 압록강의 음악분수에 휘황찬란한 조명이 비추어지고 남녀노소 많은 중국인들이 단동의 야경을 배경 삼아 제기차기등 운동과 산책을 즐기고 있었지만 건너편 북한은 불빛하나 없는 깜깜한 암흑의 세계였다.
압록강 단교를 방문하였다. 1950년 11월 8일 미국의 B-29 폭격기에 의해서 북한쪽의 3분의 1 가량이 파괴되었고 남아있는 중국측 부분은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여기도 역시 ‘중국이 미국의 침입을 잘 막아내었다’는 설명의 안보 교육장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잘 알지 못하는 몇마디 한자를 통해서 띄엄띄엄 해독하는 나의 심정은 보수의 눈을 가진 마음일까?
중국인 소유의 조그만 조각배에 의지하여 최대한 북한쪽으로 접근해 보았다. 우리 일행중 몇 사람이 북한 쪽을 향하여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도 해보고, 소리쳐 보았지만 그저 무표정하고 무덤덤하게 우리를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
북한 주민과 북한 군인들을 지척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안녕하세요’ 인사에 화답하는 이 없었다. 가끔은 손을 흔들어 화답만 해줘도 좋으련마는….
우리일행의 대분분은 실향민도 아니고 북한에 친척을 둔 사람도 아니었고 대부분 전후의 세대인 젊은 세대들 이었다. 그렇지만 어느덧 우리일행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대부분 목이 메어 말들을 못하고 있었다.
중국의 배주인도 우리 마음을 알았는지 조그만 통통배의 엔진을 꺼주었다.
우리는 10여분을 조용히, 잠잠히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이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이땅 고쳐 주소서’ 또한 그렇지 않아야 겠지만 ‘만일 추위와 배고픔과 질병의 고통이 있다면 통일의 그날까지 살아만 있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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